아들과 연인 상,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 저, 최희섭 역, 열린책들, 2011

아들과 연인 하,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 저, 최희섭 역, 열린책들, 2011


얼마 전에 영국작가 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을 읽었다.

감상평은 딱 재밌다였다.

재밌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야기 자체가 재밌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외 100여 년 전 영국 광산노동자들의 삶과 그 가족, 특히 자녀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상세히 묘사해 준다는 점에서 그랬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인 폴과 그의 여자들을 아들연인으로 규정하는 위치는 바로 그의 어머니이다.

이야기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당시에 시작되어, 그가 어른이 되고 어머니가 병으로 죽으면서 끝난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연결되었던 신체적 탯줄은 끊어졌지만, 정신적인 탯줄을 계속해서 어머니와 연결한 채로 그는 살아간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관계가 바로 삼각관계라고 한다.

그는 언제나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누군가를 새로 만나게 되면 그 관계는 자동적으로 삼각관계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는 어른이 되었어도 독립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되지만, 결국엔 정신적인 탯줄을 끊고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 된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일종의 성장소설이 된다.

 

여기서 늘 궁금해 하던 의문이 다시 들었다.

남자들, 특히 예술가들은 왜 어머니 같은 여성들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으려 갈구하는가 하는 문제다.

여자들, 특히 예술가들은 예술적 영감을 본인 내부에서부터 끌어 올리려 하지, 외부의 타인으로 얻으려는 경향은 덜한 듯 하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게 내가 계속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다.

 

위에 적었듯이 100년 전 노동자의 자녀들의 삶은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이었는데, 중학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바로 사회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21세기의 청소년들이 대부분 경험하게 되는 사춘기라는 것을 겪을 새도 없이, 그들은 아이에서 바로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폴도 어린나이에 의료기 공장에서 사무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나마 그것도 아버지는 광산에서 일을 하도록 시키고 싶었지만, 어머니 덕에 사무 일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일을 하면서도 예술적 소양을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폴은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미술전에서 상도 받고, 리버티 직물백화점에 직물 디자인을 그려 납품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나한테 하고 꽂힌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감동받는 부분에 있어 다른 독자들과는 완전하게 차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폴이 직물 디자인을 납품했다고 나오는 바로 그 리버티 회사의 천으로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의 문양이 너무 화사하고 곱고 아름다워서 바느질 하면서도 감탄하게 되는 그런 천들이었다.


libertys.jpg

(리버티 천으로 바느질 중인 작품임)

 

100년 이라는 시간과 유럽과 한국(물론 저는 베를린에 살지만 이 천은 한국에서 샀어요 ^^)이라는 공간을 완전히 초월하여, 이렇게 소설 속 주인공과 독자인 내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내가 지금 바느질 하는 천이 폴이 디자인한 그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소설을 읽게 되면, 나하고의 연결고리 찾기에 재미가 붙게 될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타인 삶까지도 속속들이 관찰하는 이들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그 작가들 덕에 나도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희망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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