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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북카페 어느 분이 읽고 계신 책이라기에, 표지도 제목도 끌리기에 나도 읽게 되었다.
때는 70년 후반에서 80년 초.
대부분 이야기는 스무 살의 해금이와 그 친구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해금의 가족들 이야기가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80년 광주 - 그 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고 물어 들어도 끔찍할 텐데 겪은 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소설이란 게 허구이지만 그 허구란 게 사실을 바탕으로 살을 붙였으니 ...
여기 아홉 명의 친구들이 있다.
동네 친구도 있고, 학교 친구도 있고.. 그렇게 친구의 친구와 친구가 되니 아홉이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같이 놀러 다녔고, 그렇게 친구 둘도 보냈으며
대학생이거나 재수생이거나 근로자로 백수로 스무살의 열꽃을 활짝 피웠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스물 한 살- 헤져서 너덜하고 고통으로 번벅이던 시간에서 이제 봄밤이 다시 열리며 끝을 맺었다.
태용이를 좋아하던 경애는 태용이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맘에 헌혈을 하러 갔다.
그러나 날아온 유탄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경애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런 경애 옆에는 수경이 있었고, 수경은 그날 이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두 송이 수선화는 지고 말았다.
아들을 낳지 못했던 승희 엄마는 남편이 딴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함께 살면서도 가슴으로 모든 걸 삼켰다.
크리스마스에 승희를 만나러 자취방에 들른 엄마는 뜨끈한 저녁을 차려놓고 애지중지 딸의 귀가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행이었는지 딸 대신 해금이가 승희엄마 곁을 지켜주었다.
승희 대신 밥도 맛있게 먹고 잠도 자고.... 천사엄마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그 시간 승희는 썰렁하고 외로운 자취방을 뒤로하고 여기저기를 헤매이고 있었는데
다시 자취방을 찾았을 땐 이미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외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라도 태어날 땐 엄마라는 울타리가 있건만
아무리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이지만 온기를 가지 사람은 커녕 행복한 기억만이라도 많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후 승희는 떠돌다가 임신한 배로 친구들 곁으로 돌아왔다.
버스 안내양을 하면서 아들을 키워보겠다고 열심히 사는 그녀는 고마운 엄마이지만
결코 좋은 딸은 아니지 않나 싶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나는 늘 곱씹고 살고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돈이 많다는 건 행복하다는 것과 비례일까, 반비례일까?
유복한 정신네도 그닥 행복한 가족은 아니다.
틀어진 가족사는 서로를 보듬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제 아픔은 알아도 남의 상처는 짐작할 뿐이지 직접 느낄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아빠, 엄마, 오빠, 정신은 각자의 인생길을 걷고 있었다.
해금에겐 빛이 나지만 아픈 존재인 환이 있었다.
환이로 인한 아픔은 시인에게 위로받으며 지냈지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 아련한 아픔으로만 남을련지...
또 얼마만의 시간이 흘러야 기억으로만 남을련지...
이젠 환의 기억보다 시인의 검거가 더 아프고 슬픈 현실이다.
이제 누구에게 위로받기보다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승희의 임신과 출산은 진만을 너무 힘들게 했다.
풋풋하고 아름답게 간직한 마음이 휩쓸린 강처럼 검붉고 무섭기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방황했다.
그리고 어느 덧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누구나 그러해야 하듯이.
아파한 시간만큼 쓰린 상처는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면역제가 되리라.
승규는 ....
냉랭하던 정신이 그저 좋았던 승규는 처참한 고문끝에 군대에 입대하지만 휴가를 앞두고 자살로 생을 마쳤다.
그것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누가 알랴.
스스로 죽었어도 사회가 죽인 것인지,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몰았던 군대인지 ...
깨끗한 영혼에, 알량한 양심에 스스로 택한 것인지....
승규를 기다리던 엄마는 가슴에 멍울졌고, 울어도 울어도 멈출 수 없는 마음의 눈물은 아버지를 더 가엾게 만들었다.
버림받은 만영, 만강 형제는 사람이 항상 그립고 가족이 항상 갖고 싶었으리라.
그렇게 승희 모자를 앞에 두어 행복하면서도 허전한 만영은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승희 말처럼 조금 더 애를 태워도 될 것 같은 스무 살 그들이다.
경애를 보내고 아파했던 태용이다.
형수가 너무 지쳐보여 엄마 몰래 기저귀도 개어주던 태용이다.
돈이 없어 조카 기저귀를 훔쳐 승희에게 가던 태용이다.
할 수 있는 건 ....아파하고 또 아파하는 일이다
할 수 없는 건....
그 시대는 그랬다.
학생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고 , 공장 근로자들도 피를 흘렸고, 지나가던 사람도 죽어가던 시절이다.
사회가, 정치가, 경제가.... 고여 썩은 물을 빼자고 학생, 근로자 할 것 없이 제 몸하나 아끼지 않고 부르짖던 시절이다.
모진 고문 끝에 살면 군대를 가야만 했던 그들이다.
여자라는 나약한 존재는 고문에 있어 예외일 수 없다. 더 박차를 가해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꽃피던 청춘은 그렇게 아파했다.
80년 광주에서 불던 바람은 그네 청춘들의 마음을 단단하게도 만들었지만 심하게도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얼마나 어여쁜 이름이던가!
스무 살이 주는 격동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움추리게 했다.
표현할수록 커지는 건 사랑이었고, 사랑의 아픔이었고, 좌절이었고, 다친 몸이었고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