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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보이 - 전면개정판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5월
평점 :
0. 들어가며
내 인생에 있어서 죽음과 관련한 첫 번째 기억은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겨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당시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시작해서 우울감과 패배감에 어디도 나가지 않고(졸업식도 안 갔다.) 집-구립도서관만 죽은 듯이 왔다 갔다 했었다. 그날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급한 일이니까 문자 확인하면 바로 전화 줘.' 불안한 마음에 열람실에서 나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아빠가 도서관으로 데리러 갈 거야. 짐 챙겨서 20분 뒤까지 정문으로 와. '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면서 씻고 짐을 싸서 도착한 장례식장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분위기와 환경이었다. 조문 와주시는 분들, 상조 직원분들, 장례 비용 정산을 위한 절차... 아직 어른으로 넘어가지 못한 내가 어른의 세계를 본 기분에 더해 앞으로 평생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할아버지와 작별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이별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와 열다섯 손녀의 아주 특별한 이별여행'이라는 책 소개 글에 호기심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별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까.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나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 작가 및 작품 소개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작품이다. 읽기 전에 기대감이 한껏 상승했다.
+) 내가 아는 그 철강왕 카네기가 이 카네기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맞았다. 카네기는 영미권에 2800여 개의 도서관을 지으며 도서관 보급에 크게 공헌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영국도서관협회가 카네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카네기 상을 설립했다고 한다. 현재는 영국도서관협회 사서들이 모여 그 해 영국에서 출간된 어린이, 청소년 도서 중 가장 훌륭한 작품에게 이 상을 수여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카네기상)
작가인 팀 보울러는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리버보이 외에도 별빛 칸타빌레, 스쿼시 등의 작품을 통해 꿈, 사랑, 가족애, 우정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환성적인 미스터리와 혼합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리버보이에서도 신비로운 존재인 리버보이가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하며 읽으면 이 책이 주는 의미가 더 와닿으리라고 생각한다.
2. 줄거리 및 후기
* 수영을 사랑하는 제스는 수영만큼 사랑하는 예술가 할아버지와 함께 성장했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수영하는 모습을 봐주던 할아버지가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할아버지를 염려하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조기 퇴원 후 원래 계획되었던 당신의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강행한다.
도시와는 다른 조용한 숲속의 별장.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온 힘을 쏟아 마지막 그림 작품을 완성하고자 한다. 나날이 쇠약해지는 할아버지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제스와 가족들. 그럴 때마다 제스는 별장 옆을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또 수영하며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그 강 어딘가에서 제스는 자신만큼 뛰어난 수영 실력을 가진 미지의 리버보이를 보게 된다. 신비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리버보이와의 만남이 머릿속을 꽉 채운 어느 날 할아버지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답답한 마음에 강으로 뛰어든 제스는 멀리서만 보았던 리버보이와 대면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과 이별을 맞닥뜨리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그 순간 충분히 슬퍼하고 표현하고 또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삶을 걸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제스와 할아버지의 여행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마치 강물의 일생처럼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지만 우리는 결국 그 순간을 넘어서 또 다음으로 흘러갈 수 있다. 잊지 말고 살아가야지.
성인인 나도 환갑이 넘은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의 죽음은 더욱 그려지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15살인 제스가 할아버지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통해 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기특하게 다가왔다.
'나와 할아버지의 이별에도 이런 과정이 있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마무리도 제스의 할아버지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하며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제스의 할아버지를 보면서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에 있어서 노년기의 발달과업인 자아통합이 떠올랐다. )
출퇴근길 버스에서 읽으며 소설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눈물이 흘렀다. 슬퍼서도 있지만 앞서 말했던 제스의 성장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포가 될까 봐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엔딩 장면에서 제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단단함과 가족 간의 믿음, 사랑이 오롯이 느껴졌다. 제스는 이 여행에서 얻은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잘 가꾸어나가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3. 공유해보기
공유하고 싶은 구절 중 스포일러를 피할 수 있는 몇 구절을 적어본다.
할아버지는 이제 짐을 벗어 버린 듯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마치 미래가 계속 존재하는 양 앞으로의 이야기를 펼쳤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스 역시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래, 어쩌면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 내실 지도 몰라.
p197
책을 읽으며 제스가 건강이 악화된 할아버지와 변화된 가족의 역할 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성숙하다고 느껴졌다. 위의 구절을 그런 제스가 오랜만에 10대 청소년, 아이 같다고 느껴진 부분. 할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기적을 바라는 모습이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다시 생각해 보니 어른들도 객관적인 판단으로 결과가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기적을 바라기도 하니,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어린아이의 면모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 자기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p206
리버보이가 주는 인생의 지혜. 흔히 '인생은 흘러가는 강과 같다.'라고 말한다. 그럼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또 인생의 마무리인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리버보이는 강의 일생을 통해 제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족이나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죽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장난스럽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난감했었다. 성인인 나도 인생과 죽음이란 누군가에게 설명하긴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리버보이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장거리 수영을 할 때는 기술 못지않게 의지도 중요한 법이다. 제스는 탁월한 기술과 굳은 의지 그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단지 커다란 도전이 필요할 분이었다. 의지를 다지고 스스로를 시험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언젠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19,20p
제스는 다시 수영에 집중했다. 아직 남은 힘이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계속해서 자신을 몰아갔다. 이제는 몸의 모든 부분이 저려왔다. 팔과 다리, 어깨, 심지어 생각까지도 제스에게 제발 그만두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p227
15살 아이인 제스가 자신에게 주어진, 어쩌면 스스로 주어진 과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와닿았다. 제스의 끈기와 용기, 그리고 제스의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믿음이 그 여정을 이끌어갈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