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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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옷을 정리하고 얇고 시원한 여름 옷을 행거에 정리했다. 늦은 저녁 수영을 가는 길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휘적거리며 밤거리를 걷는데 서늘한 느낌보다 아직 식지 않은 아스팔트에 열기가 먼저 전해졌다. '이제 정말 여름이 시작되었다.'라는 느낌이 드는 이 시기에 최지은 작가님의 '우리의 여름에게'라는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다.

평소 문학을 가장 선호하는지라 에세이를 읽기 전 고민이 많았는데 어라, 첫 번째 글인 '자랑 같지만,'을 읽고 바로 눈물이 나왔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끼니 걱정을 하던 시기, 어린 시절의 작가님은 어느 날 할머니가 점심으로 드시던 오이지 반찬으로 밥 한 공기를 맛있게 먹었고, 그 이후로 할머님은 매 끼니 오이지를 챙겨주셨다. 어느 날 밤 작가님이 자다 깬 새벽 할머니가 온몸에 화상을 입은 모습을 보게 된다. 알고 보니 작가님에게 먹일 오이지를 만들다가 그만 끓인 소금물을 쏟으며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때 할머니는 하나의 커다란 물방울 같았습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아주 커다란 물방울. 곧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이 커다란 무언가가 눈앞에 있었어요.
13쪽, '자랑 같지만,'

그날 물집이 잡힌 할머님의 모습을 마주한 어린 작가님의 그 순간, 무겁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집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가며 조마조마한 마음, 수업이 끝난 후 커다란 물방울 같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작가님을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 모든 것이 뒤섞여서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작가님은 이 순간을 아픔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아픔과 함께 '깊은 사랑'이 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사랑을 받은 '내'가 이제는 이 깊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실 에세이는 내가 실제로 대면하지 않은 누군가의 내밀한 부분을 읽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세이보다 문학을 선호하는 면이 있었는데, 작가님의 가슴 아프지만 마음이 충만해지는 고백의 첫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의 빗장이 열리고 다음 글들을 더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은 다음날 사내식당에 가서 반찬을 확인하는데 운명처럼 오이지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다. 혼자 울컥하면서... '오이지가 참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에요, 그렇죠?'라고 같이 식사하러 간 동료들에게 말했다. )

이 에세이는 작가님의 어린 시절과 꼭 붙어있다. 성인이 된 작가님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풀어내는 부분이 많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읽으며 나의 비슷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었다.

종이접기, 노래만들기, 인형 놀이, 끝말잇기, 빙고, 레고만큼 내가 좋아하는 놀이는 흙과 풀과 바람과 물방울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그때 수집한 기쁨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외롭고 지칠 때마다 나를 달랜다. 어린 내가 모아놓은 기쁨을 지금 나에게 빌려준다.

156쪽, '계수나무 숲'

작가님이 풀어낸 사랑의 순간들을 읽으면서 감탄했다. 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다. 내 안에도 이런 사랑이 분명 머무르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저항 없이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가 내게 남기고 간 재료는 여기저기 잘 쓰이도록 이래저래 알맞다. 할머니는 누구로부터 이렇게 유용한 재료를 받았을까. 하나하나 받고, 차곡차곡 모아두었을 할머니의 시간을 그려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아주 멀리서,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향해 달려오는 사랑이 느껴진다.

60쪽, '그리될 거라는 믿음'

무엇보다 작가님이 중간중간 던지는 질문에 또 내 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당신의 여름 과일이 궁금합니다.'를 읽고는 작가님과 나의 여름 과일이 같아서 반가웠다. 나도 올해 몇 년 만에 가족들과 모여 그 과일을 먹었는데 과일이 맛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나중에 몇 해의 여름이 지나도 떠올릴 추억이 되었다. 작가님의 여름 과일과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는 것으로...

가슴 찡함에 눈물이 났다가, 또 마음이 따스함과 보드라움으로 차올라서 한없이 미소 지어졌다가... 내 안의 어린이를 마주하고 대화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추천한다. 책 제목처럼 여름밤에 스탠드를 켜놓고 냉침차와 함께 읽기 좋은 <<여름의 우리에게>>를 추천한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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