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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로맨스
존 엘드리지 & 브렌트 커티스 지음, 강주헌 옮김 / 포이에마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존 엘드리지와 브렌트 커티스(이하 저자)가 공저한 이 책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로맨스를 회복하기 위한 안내 책자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마음과의 사랑이다’”라고 말한다.(p. 29)
우리가 교회의 신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교회 활동과 많은 성경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우리는 거룩한 로맨스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거룩한 로맨스’를 동경하는 마음이 감춰져 있다”(p. 46)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거룩한 로맨스를 꿈꾸고 소망한다.
그런데 이렇게 거룩한 로맨스를 꿈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저자는 “화살의 메시지”라고 한다. 이러한 화살의 메시지는 네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화살의 메시지를 받고 더욱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 도덕적으로는 바를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영혼의 자유는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룩한 로맨스는 마치 미지의 세계와 같다.
화살과 미지의 로맨스 이 둘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주의 존재 중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화살을 멈추실 수 있고, 삶에 더 큰 축복을 내려주실 수 있다”(p. 129)라고 말한다.
저자는 영원한 로맨티스트로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준다. 1막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다. 하지만 2막에서는 인간에게 배신당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준다. 3막에서는 시험받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분은 자신의 권능으로 인간들을 멸망시키고 복종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문제는 하나님의 무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사랑하신다는 데 있다. 사랑이 우리 삶을 복잡하게 만들 듯이 하나님의 삶까지 복잡하게 만든다.”(p. 144)
이러한 마음을 얻기 위해 우리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필립 얀시가 말했듯이, 성육신은 적진으로 대담하게 침입한 것이었다. 온 세상이 악의 권세에 눌려 있었고, 우리는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하러 나서셨다.”(p. 167)
하지만 또 다른 메시지를 속삭이는 목소리도 있다. 저자는 “이런 메시지는 인류의 타락이라는 원죄를 지워버리지 못한 비애에서 비롯된다.”(p. 183)
“우리의 적은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해 지위가 가장 높은 천사 중 하나인, 아침의 아들 루시퍼이다. 루시퍼는 거룩한 로맨스에서 악당이다.... 사단이 마음에 품고 있는 단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연인을 파괴하고자 한다.”(p. 186,187)
이러한 전략은 우리 삶의 전 방위적으로 나타난다. 분노, 냉소, 수치심, 모욕, 무관심, 냉담 심지어는 하나님 말씀으로도 우리를 정죄하게 함으로써 거룩한 로맨스를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의 로맨스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누는 흑백 논리적 종교관으로 변질 시켜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예배와 친교를 일종의 오락거리로 전락시킨다.”(p. 198)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사단의 권세와 생각들을 깨뜨려 버렸다. 그리고 우리와 다시한 번 거룩한 로맨스를 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에 머물면서’ 길을 떠난 순례자처럼 삶을 살아가는 용기이다. 동시에 우리의 진정한 ‘집’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요컨대 우리 정체성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좋은 친구인 예수님과 오랫동안 함께 하는 삶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어느덧 깨닫게 될 것이다”(p. 292)
이 책은 성경 66권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저자들의 경험과 거룩한 상상력을 깃들여서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의 고민과 상처들로 인해서 상실된 마음들을 회복시켜 주고자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꿈을 꾸라! 상상력을 동원하라!”라고 말한다. 사랑을 나눌 때에 서로의 생각으로 꿈을 꾸고 상상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의 로맨스를 할 때도 꿈을 꾸라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늘 제한적인 생각만 하도록 강요받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믿음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론 지나친 신비주의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자도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한손에는 신조들을, 다른 한 손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 형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책, 시, 노래, 그림 등 어느것이라도 상관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름의 방식으로 거룩한 로맨스의 일부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돈 허드슨은 ‘궁극적으로 예술은 하늘나라의 창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p. 350)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고 싶어졌다. 특히 천국에 대해서 많이 상상하고 싶어졌다. 예전에 천국하면 솔직히 맨날 찬양만해야 하는 것 같아서 - 사실 그렇게 배워 왔다. 천국의 화려함은 늘 들었지만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늘 찬양밖에 없었던 것 같다- 천국가면 지겨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
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천국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 있어서 유쾌한 상상을 하게 해 주고 뜨거운 사랑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첫 사랑 이후 다시 한 번 하나님과의 로맨스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