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2disc) - 컬러 & 스페셜 블랙 버전 본편 수록
임권택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스튜디오 A(STUDIO A)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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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라면 다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물체의 당연한 본능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차마 그 본능을 실현시키지는 못하는 상황. 참 솔직하게 그린 영화다.

배우들의 속을 알 듯 말 듯한 연기도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 같다. 현실은 상황 상황이 명확하지 않거든. 우리가 눈물나고 짠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영화에서 기쁨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현실의 아주 일부분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확대한 건지도 모른다. 진짜 현실이란 이렇게 공상 속에서, 밋밋하게, 막상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영화의 결말은 결코 극적이지 않다. 즉, 영화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다.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씁쓸하다. 통쾌한 영화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찝찝한 영화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영화와 차별성이 있다.

와인은 주인공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길다란 선이다. 이 와인은, 안성기가 김규리에게 반해 주었던 선물이고, 김규리가 다시 자신의 마음을 일부 표현하고자 안성기에게 돌려주었던 선물이고, 병들어 있는 아내의 병상 옆에서 그녀를 생각하며 홀짝이던 와인, 와인을 싫어하는 남편이 웬일로 마시나 해서 병자도 벌컥 벌컥 마셔본 와인. 그리고 아내가 떠나기 전에 남편에서 선물로 준 와인. 아내 사별 후 그녀가 온다기에 차려 놓은 술상에 곁들이려 했던. 하지만 자신의 결정으로 같이 비울 일은 없었던. 그렇다. 이 와인은 세 주인공을 각각 거치지만, 어느 두 사람도 함께 마시지 않는다. 세상의 흐름도, 감정의 흐름도, 그냥 흘러 흘러 가는 것이고, 같은 타이밍에 결코 함께 담겨지지 못한다.

이러한 불일치를 우리는 얼마나 흔하게 경험하는가? 그래서 현실을 반영한 영화이다. 현실은 그냥 이렇게 무탈하게 흘러가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리 격한 삶을 산 사람일지라도 시간으로 본다면 인생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 가지 천천히 변화하는 것이 있다면 노화. 몸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죽음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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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Case Reports: A Practical Guide from Conception Through Publication (Paperback, 2017)
Clifford Packer /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AG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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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에서는 SR과 RCT를 제일 상위에 놓고 케이스 레포트는 저 바닥에 깔아놓았다. 그 그림이 모든 것을 망쳤다. 사람들은 케이스 레포트가 하층민 정도 되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권위는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을.

의사. 환자를 열심히 보는 것이 본분이다. 케이스 레포트는 의사의 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케이스를 열심히 쓰는 사람은 분명 본분에 충실한 의사일 것이다.

병원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의사를 고를 때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그 의사가 케이스 논문을 많이 썼는가를 봐라. 안 썼다고 나쁜 의사는 아니지만, 많이 썼다면 분명 좋은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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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지돈 지음, 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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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 취향과 맞지 않아서인가. 그다지 좋은 느낌을 받진 못했다. 중간 중간 서너 문장 정도가 마음에 살짝 와닿았을 뿐.

영화를 좋아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소설의 진정한 애독자라는 것, 알겠다. 작가가. 깊은 사색보다는 딱 요즘 스타일, sns세대의 사고를 대변하는 것 같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나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느 서평가의 최후 한 편만큼은 좋았다. 단편소설다움이 있다. 근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을 외국으로 잡은 작품들. 화자 또한 외국인인. 시도는 좋으나 어색하다. 그 나라 사람이 아니니까 뭔가 한계가 있는 거다. 적어도 자국민이 읽었을 때 진짜 자기 나라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 이런 시도를 하려면.

남성과 여성의 이름을 뒤바꿔놓은 듯한 이름 설정. 이것조차 농담인가. LGBT나 페미니스트인가. 뒤죽박죽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농담집. 단, 좀 썰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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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드모델입니다 - 날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하여
하영은 지음 / 라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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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이란 사람은 대단하다. 누드모델에 대한 인식이 지금도 편견에 젖어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30년 전에는 생각하나마나한 정도일테니까. 그런데도 당당하게 누드모델로 활동하며 협회까지 창설해 대한민국에서 한 직업에 대한 인식과 위치를 바꾸려고 시도 중이니까.

그런데 글은 그저 그렇다. 줄 띄우기도 넓고... 사실 이 책 한 권은 결국 신문기사 인터뷰 한 바닥이면 되었을 것 같다. 아쉽다. 그래도 현재 이슈가 되기에는 충분하겠지. 시대 흐름에도 맞고, 신문기자들도 좋아할 컨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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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
조영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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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의 글은 쉽다. 쉽게 읽힌다. 어려운 내용인데도 머릿 속에서 나오는대로, 애드립을 보는 듯이 술술 풀어가기 때문에 쉽다. 쉽게 말하니까 쉬운 것이다. 거창하게 머릿 속에서 굴리고 굴려서 나오는 단어가 아니니까.


지난 번엔 현대미술에 대해 쉽게 쓴 책을 봤었는데, 이번엔 일본이다. 제목 보면 알 수 있듯 조영남은 제목도 잘 뽑는다. 현대미술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제목도 한 눈에 들어오는 문구로 인상적으로 짓는다.


단점이라면, 자기 출생이라던가 옛날 얘기 등을 하도 여기 저기에서 하다보니 다른 신문기사나 단행본과 겹치는 내용들이 꾸준히 등장한다는 것. 하지만 그 또한 그의 애드립 서술 기법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용인할 수 있다.


이번엔 책의 내용에 대해서 보자. 일본은 나이가 들수록 높이 평가하게 되는 나라다. 나도 어렸을 적 일본 사람은 아주 이상스러울 것이라는 교육 속에서 자랐지만, 직접 만나본 일본 사람, 그리고 이제는 문화가 다 개방되어 있어 접하는 일본 영화를 봐도 그들에게는 분명 장점이 있다. 고매한 맛이 있다.


조영남은 그 사실을 20년 전에 당당하게 밝혔구나. 그의 사생활이 아무리 어떻고 저떻고 해도, 그 과감함과 용감함에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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