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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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멸망 그리고 이상한 여고생. 영화는 이정도의 평밖에 주지 못했지만, 원작은 역시 달랐다. 기대했던 대로다.

 

70대의 노인과 불혹을 바라보는 제자가 17살 소녀를 끼고 벌이는 갈등은 영화의 것과 다르지 않고 내용의 흐름도 비슷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적요 시인의 은교를 향한 열망은 비교할 수 없고 깊이부터가 다르다. 소설에 나타난 젊음에 대한 동경은 나 자신을 노인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노인의 것들이 내 것이 되어가는 게 괴롭고 슬퍼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소설은 공감할 부분이 의외로 많다. 예컨대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이 그렇다. 오랫동안 고집하였고 믿어온 세계를 단번에 허문 사람, 새로운 감각을 선물한 소중한 사람을 마음 그대로 원하고 원하는 시인의 마음은 다르게 부를 필요 없이 사랑이다. 허리춤으로 파고든 은교를 상상했던 만큼 품을 수 있었어도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녀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편견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뿐.)

 

또 한 가지 내가 깊이 공감했던 것은 서지우의 열등감이었다. 그는 사실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으나, 단지 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고 그랬기 때문에 그런 비극을 당한 가엽고 불쌍한 사람이었다. 고집과 끈기를 원하던 분야에서 발휘하지 못한 데서 오는 괴로움. 그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서 '나는 진실로 청춘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고백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이런 섬세한 심리 묘사 덕분에, 은교라는 애가 소설에서도 꽤 알쏭달쏭한 것을 빼면, 영화에서 느낀 빈자리는 어느 정도 채운 것 같다. 서스펜스로 치닫는 마지막이 아쉽기는 해도 나이 듦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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