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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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첫 작품을 읽고 손이 덜덜 떨렸었다. 끔찍한 사건의 속보를 무표정으로 전하는 아나운서를 보는 것 같았다. <고백>, <속죄>의 그런 분위기가 신선해서 빠져 들긴 했지만, 한 번 더 읽으라면 꺼려진다. 두 작품 읽은 게 다지만 미나토 가나에란 이름을 들으면 냉철한 아나운서가 연상이 된다.

 

근데 이번 야행 관람차는 예외로 두어야겠다. 물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슬금슬금 쫓아와 뒤통수쳤던 전작들과는 정말 달랐다. 미스터리를 가장한 가족 소설이었다. 인간다운 인간이란?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었다. 불편함 끝에 따뜻함이 따랐다.

 

언덕 위에 주택가가 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언덕을 오르는 시간은 자신들의 가치와 자부심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치솟아 오른 언덕은 굳이 보여주려 애쓰지 않아도 드러나는 최고의 과시다. 그런데 언덕의 위상을 흔들릴만한 사건이 터졌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그 집에서였다. 언덕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그 집 정숙하고 기품 있던 아내가 의사 남편을 장식품으로 살해한 것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서술자가 되어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줄줄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엄마가 아빠를 죽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딸, 자기 때문이라 자책하는 아들, 이들의 배다른 형제 큰 아들, 부자 동네에서 가장 힘겹게 사는 여자와 그녀의 비정상적인 가족, 매일 같이 이상스런 가방을 들고 다니는 노인.

 

꾹꾹 삼켜둔 사연과 문제가 드러난다. 남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으로 닥치니 묵혀두던 속내가 까발라진다. 언덕에서 사는 이유가 행복 겉치장에 있었는데, 언덕이 위협을 받으니 허상이 무너지는 게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과 가족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 있으면 남들보다는 낫겠지 하고 있는 문제를 없던 것 취급했다. 그 집도 그랬다. 그 집이 아니었다면 이 집도 저 집도 결국 무슨 사건 터졌을 것이다.

 

밤하늘에 우뚝 솟은 관람차를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산은 상류층, 바다는 하류층이라고 주장하지만, 관람차를 타고 둘 다 한 번에 굽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P163

 

평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이상한 곳에서 무리해서 살면 점점 발밑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끼게 돼. 힘껏 버티지 않으면 굴러 떨어지고 말아. 하지만 그렇게 의식하면 할수록 언덕의 경사는 점점 가팔라져. 아주머니는 이미 한계였던 게 아닐까? P314

 

언덕길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버티는 사이에 자신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일그러졌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니 살짝만 등을 떠밀려도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지고 만다. P315

 

사실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등장인물을 좀 줄였으면 미스터리적 요소를 차라리 빼버렸으면 내용에 더 집중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다행이고 뿌듯했던 게 마지막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덕을 위안삼고 행복을 가장하려 했던 거짓된 사람들이 함께 답을 찾으려 애쓰면서 그토록 바라던 행복을 느꼈던 마지막 장면.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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