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라서 겪은 서글픔<조선 공주 실록>

조선공주실록 - 화려한 이름 아래 가려진 공주들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조선 공주 실록이란 사실 없는 책이다. 여인이 기록으로 영원히 살기란 가능치 않던 냉혹한 시대라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삶이니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사라진 저편의 공주들을 복원시켜 기록한 이 책에 호기심을 걸었다.

출생에서 사망까지 7명의 공주들의 삶을 역사학자의 평가와 상상력으로 엿본 기회는 의외의 씁쓸함을 남겼다. 공주이기에 겪었던 비애를 말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여기 실린 7명이 유독 비극적이었는지. 무엇이든 간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특별하나 평범하나 삶의 무게란 인간 누구에게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의 변화와 함께 이들의 처지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길 줄 알아야했다.

경혜 공주, 누구보다도 극적이고 가련한 삶을 살았다. 노비로 다시 공주로 승려로. 승려로의 삶은 스스로 선택했다 해도, 그럼으로써 지긋지긋한 홍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해도 자유란 없었다. 남겨진 자녀들의 면천을 위해 원수 세조에게 머리를 조아리니 모두 공주라는 이름이 가져온 결과였다.

정명 공주, 그나마 이 책의 주인공들 중에 가장 나은 생을 살지 않았나 싶다. 고통 끝에는 낙원이라고 정명 공주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선조의 사랑을 극진히 받고 자랐지만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공주와 어머니 인목 대비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공주가 기댔던 것은 바로 서예였다. 글자 한 획 한 획 힘과 기세가 펄펄한게 철통 감시 아래에 있는 처지가 무색할 정도였으니 솜씨는 말 다했다. 그러다가 인조반정으로 공주의 자리를 회복하게 되어 왕족의 명예를 이어 받아 숨을 돌리는 듯싶었으나 억울하게 역모 주도자로 몰려 죽을 고비로 벼랑 끝에 다시 서게 되니... 이것 또한 다 그녀가 공주이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살기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토록 즐겨했던 서예를 포기하고 한문을 일절 쓰지 않으며 정치에는 눈과 귀를 닫아버린 것이었다.

효명 옹주. 폐귀인 조씨와 인조 사이의 딸. 어릴 때 어리광을 많이 받고 자란 탓인지 성품에 문제가 많았던 듯싶다. 결국 왕권이 교차되면서 옹주는 인과응보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옹주는 권력의 달콤함만 잡고 싶었던듯, 자신의 시아버지를 왕으로 삼으려 했다. 흠. 이게 정말이라면. 헐이다. 결국 귀양 당해 쓸쓸히 살다 간다.

의순 공주. 효종의 양녀다. 아름다운 미모와 충과 의리가 넘치는 성격으로 청나라 섭정 도르곤의 아내로 선택되어 끌려갔다. 왕의 양녀가 되어 공주의 지위에 올랐다면 그만큼 대우받으며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남편을 여이고 젊은 나이에 귀국하였다. 사람들의 화냥년 소리가 얼마나 모질었는지 이른 나이에 죽었다.

이 밖의 공주들의 생으로 추측할 수 있듯, 결코 이들이 화려했고 존귀했다고만 말할 수 없다. 철저한 유교 중심 사회에서 이들은 정치의 흐름에 자신을 선택의 여지없이 내맡겨야 했으며 좋든 싫든 공주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숨을 삼키는 법을 배워야 했다. 정명 공주. 그녀가 그토록 훌륭했던 서예를 그만둔 이유도 그렇다. 부녀자답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