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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드 1 ㅣ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예케 몽골 울루스의 기반을 세운 칸, 칭기즈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원히 기억될 것처럼 지금도 그의 역사는 계속 쓰여 지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그를 지질 줄 모르는 전설로 만든다. 귀하게 태어났으나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겨야 하는 그렇지만 언제나 우뚝 일어나는 영웅 소설 속 주인공말이다.
그러나 이 책 <조드>는 그의 영웅적인 면을 칭송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영웅이 되기 전의, 온갖 시련 속의 어린 그와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이다.
김형수 작가는 10년 넘게 몽골을 방문하고 탐험하면서 초원을 기록했다. 정착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유럽인들의 역사관을 탈피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그 노력의 산물로서 역사 속 칭기즈 칸의 호전적인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전면적으로 보여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유목민들의 삶에 빠지는 것 같았다. 조드가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올 줄이야, 가축과 눈으로 소통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조드란 유라시아 내륙 평원에서 일어나는 자연 재앙으로 유목민의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재난이다. 책에서는 눈이 많이 쌓여 가축이 초지를 찾지 못해 죽는 하얀 조드, 여름 가을동안 초지가 말라 겨울 뿌리까지 고갈되는 검은 조드, 눈보라나 흙바람 때문에 가축이 나다닐 수 없게 되어 죽어가는 눈보라 조드, 강추위로 땅이 얼어붙어 굶어 죽는 거울 조드로 자세히 묘사된다.
한바탕 조드가 휩쓸고 간 자리는 처참하지만 덕분에 자연은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평화를 찾기 위해 소중한 가족과 가축을 지켜내고자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조드의 매서운 공격은 더욱 심해졌다. 부족의 연합 체제가 부서지면서부터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고 해체되면서 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테무진은 어땠을까. 하루아침에 적이 되어버린 자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은 험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는 늑대족의 직계 후손답게 뛰어난 관찰력, 통찰력을 가졌다. 절망하면서도 세상에는 희망이 언제나 있음을 직시하였다. 그를 돕는 손길이 있었고 따뜻한 심장을 나눌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켰고 아내를 구했다. 받은 도움을 나누었다. 위대한 지도자가 위기를 딛고 성장하면서 몽골 평원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유목민들의 격동적인 시기를 재밌게 읽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은 책을 덮고 나서도 지속되었다. 칭기즈 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도 당연히 전쟁이었는데, 이 책은 칭기즈 칸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물로 주었다. 인간적인 애 말이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포기하고 싶어 했던 어린 테무진의 모습에서, 세상은 믿을게 못돼 하던 그가 절망도 있지만 사랑의 숨결도 세상에 있다고 기쁨을 흘리는 장면에서 테무진은 전설적인 위대자이기 보다는 현실적인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생동감 넘치는 유목인들의 인간적인 삶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