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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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작가의 새 작품이라 했다. 완득이를 아직 만나지 못한 입장에서 전작을 먼저 읽고 봐야하나 했는데, 제목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너무 읽고 싶어졌다. 눈물을 펑펑 쏟게 했던 소설 <가시고기>의 감동이 갑자기 일었고, 주인공들의 영혼에 긁힌 상처의 치유를 이 책으로도 경험하고 싶었다.

 

사실 많이 놀랐다. 책의 무게도 내용도 가벼워서 말이다. 가시가 주는 따끔함에도 소설 속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웃음이 넘쳐난다. 이들은 가시로 긁힌 자국에 사랑을 바른다. 그 따뜻함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 해일은 남의 물건을 순식간에 자기 물건으로 바꾸어 놓는 놀라운 손의 소유자다. 그러나 가지고 싶어 가진 것이 아니다. 원치 않게 가지게 된 손이다. 그가 어느 날 짝꿍 지란의, 정확히는 지란의 새 아빠의 전자수첩을 훔친다. 진오, 지란, 다영과 친해지면서 그는 고민한다. 가시를 고백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밝고 당찬 지란이지만 그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가시가 있다. 2명의 아빠가 있다는 사실. 여자 친구를 둔, 술과 더 친한 친 아빠와 서먹서먹한 전자수첩을 잃어버린 후 더 서먹해진 새 아빠다. 지란은 화목한 가정을 바란다. 함께 유정란을 부화시켜 노란 병아리를 새 가족으로 맞이한, 알콩달콩한 해일의 가족이 그저 부럽다. 이제 그만 빼고 싶다. 자신이 꽁꽁 숨겨둔 가시를.

 

고백하지 못하고 숨긴 일들이 예리한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혀 있다. 뽑자. 너무 늦어 곪아터지기 전에. 이제와 헤집고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렵지만, 저 가시고백이 쿡쿡 박힌 심장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P247)

 

마침내 고백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가시 뺀 자리의 고름을 함께 짜주었다. 물론 많은 용기를 내야했다. 고백을 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아프고 어려운 일이었으니. 그러나 이들이 우정과 사랑으로 해내고 보니 가시 따위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였을 때, 누구나 마음 속 아픔이 있고 아픔이 있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들은 성장해 있었다.

 

감동과 공감을 주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일의 고민과 아픔을 조금 더 신중하고 자세하게 그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고백의 현장이 좀 더 생동감 넘치는 순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친구들의 반응은 어딘가 현실적이지 못했고 무덤덤했다. 마치 가시는 사랑으로 보듬는 것! 이라는 주제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살짝 아쉬웠다.

 

사람의 상처는 사람이 만든다. 그러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 또한 사람이 한다. 주고받은 사랑으로 서로의 상처는 이미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깊은 감동을 주었던 작가의 말을 적어본다.

 

삶의 근육은 많은 추억과 경험으로 인해 쌓이는 것입니다. 뻔뻔함이 아닌 노련한 당당함으로 생과 마주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살아 보니 미움보다는 사랑이 그래도 더 괜찮은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 미운 사람 여전히 미워하지만, 좋은 사람 아프게 그냥 떠나보내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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