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홍신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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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독이란 말이 무엇인지 몰랐을 적의 일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내게 그 말을 처음 들려준 장본인은 창틀에 멍하니 앉아 운동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교실의 야단 벅적함과 대비되는 경계에 이끌려 다가가 말을 거니 그 친구가 고독을 즐기는 중이다고 했다. 그게 뭘까. 즐길 줄 알아야 고독을 하는구나, 나도 뭔가 인생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기억이다. 고작 초등학생이 몇 년을 살았다고 인생의 고뇌를 알았을까.

 

 

잠시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준 책 <백년 동안의 고독>은 부엔디아라는 성을 쓰는 일족의 백년 역사를 다룬 노벨문학상 작품이다. 또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적 소설로 유명하다.

 

 

환상 속의 리얼리즘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다. 문명의 번성과 자유당과 보수당이 대치하는 정치적 상황을 담고 있으며 그 속에 인간의 문명과 금기에 대한 호기심, 탐욕을 자세히 드러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마을 마콘도의 실질적 설립자이고 책임자였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사촌이자 아내인 우르술라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마을의 안정과 번성을 위해서 탐구적 자세를 버리지 않으며 열과 성을 다해 마을을 돌보았다. 그들의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우르술라의 염려와는 달리 돼지 꼬리 없이 정상적으로 태어났고 이어 딸 아마란타도 태어났다. 대령의 어린 아내 레메디오스의 죽음, 대령의 정부를 향한 자유주의를 내세운 반란 등 세세한 사건, 이들의 이름을 이어받아 성장한 자손들의 모습에서 결코 망(亡)의 조짐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자손들에게 붙여진 이름처럼 삶과 바퀴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만들었다가 또 다시 무수기를 반복하는 이상한 버릇 뿐 아니라 망각과 고독도 마찬가지였다. 기쁨의 추억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부엔디아 사람에게 고독은 죽음을 부르는 전염병이었다.

 

 

마콘도가 세워지고 번창하고 무너져 황폐해가는 과정은 일족의 역사와 맞물려있다. 종족의 피는 세월의 무서운 고독에 공격당하고 먹히기를 반복했고 종극에 이르러서는 근친상간의 결과인 마지막 자손, 돼지 꼬리 아이까지 완전히 멸해졌다. 그 때는 종족의 삶의 시작과 끝을 예언한 양피지가 해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그 양피지이다. 리얼리즘에 환상이 섞인 부분이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그 장면은 환상적 감각이 폭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길고 긴 종족의 고독이 언제쯤 끝나나 손꼽아 기다렸지만 묘한 아쉬움과 신비함에 고독이란 결코 즐길 수 없는 것임을 피부로 느끼며 마지막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거의 한 달을 들고 다니며 지난 2주에 걸쳐 마음 굳게 먹고 몰아 읽은 소설이었다. 번역된 문장의 길이가 약간 어색하고 너무 길어 숨이 차기도 했지만 부엔디아의 백년 고독사를 따라가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덮고 나니 인생의 고뇌, 특히 고독을 즐기기란 어렵다는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살펴본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 기회가 준 환상과 신비는, 마지막 장면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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