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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ㅣ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6
이수정 지음, 안경희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손영운 기획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정약용
정말 많은 일을 하신 분인데, 실제로 그의 업적이 너무나 축소되어 알려진 것 같아 속상하다.
세종대왕 때의 장영실과 함께 기계 제작에 일가견을 보여 건설, 기계 쪽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정약용의 업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정약용.. 양반, 서민 구분하지 않고 아이들과 놀러다니길 좋아했으며
천연두를 앓아서 눈썹에 세부분으로 나뉘어 삼미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늘 모든것을 궁금해하던 아이. 그래서 책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여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책도
읽어서 후에 많은 업적을 쌓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한양으로 오고 나서 곧 소시에 합격하였고, 그당시 나라를 지배하던 노론이 아닌 새로운 인재를
찾고자 하던 정조의 눈에 띄어 많은 일을 하게되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던 정약용은 실학도 접하고 천주교도 학문으로 접하는데, 나중에 천주교로 인해 유배를 가게 된다.
정조가 수원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만들고 수원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가곤 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자 정약용으로 하여금 배다리를 만들도록 한다.
배를 서로 연결하고 그 위에 판자를 얹어 배다리를 만들었는데,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한강에 가서 확인하는 과정으로 정확하고 능률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수원 화성 역시 새로운 학문을 바탕으로 각종 기계들도 만들고, 10년은 걸린다던 성을 3년도 안되어 만들 수 있었다.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정조와 정약용 모두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워낙 강하였기 때문에 좀 더 조선시대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텐데, 정약용은 유배를 가고 정조는 일찍 죽어 너무나 아쉽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