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너가 있고 관료적인 체계를 갖춘 회사라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그 안에는 대체 매일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미생 같은 웹툰이나 드라마가 나오긴 하지만이 소설 같은 디테일과 깊이는 없을 것이다.

 

중국에 있는 한국계 중소 조선회사 부두에서 진수식을 앞둔 큰 배가 느닷없이 쓰러지면서 소설은 시작한다보험에 가입되었기 때문에 보험회사와 보상액을 가지고 협상을 해야한다이 일을 누가 하느냐도 쉽게 정해지는 게 아니다잘되면 좋지만 안 되면 책임을 져야한다멀찍이 지켜보다가 될만하면 숫가락을 얹는 일도 다반사다아예 다된 밥을 다 빼앗아 자기가 지은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빤히 속보이는 짓을 해도 회장님은 아시는 지 모르는지원래 신임을 받던 그 임원은 더욱 승승장구하고 끈없고 배경없는 실무자는 밀려난다. 

 

배의 침수 원인은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아무도 진짜 사건의 원인에는 관심이 없다어떻게 해서든 보험사로부터 돈을 많이 받아낼 수 있는 참으로 보이는 이유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작업이 중요하다외부의 공신력있는 기관을 구워삶든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 (때로는 위험한 줄타기까지 하면서최대의 보험금을 타내는 게 최선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며 유능한 사람은 하나둘 떠난다남은 사람은 일을 더 맡으며 괴롭다어쨌든 한달을 버티면 월급은 나오기 때문에 하루하루 소모해가며 견딘다대기업에서 고액으로 스카우트해서 모셔온 직원들은 시스템이 형편없는 중소 기업에서 뭔가 바꿀 생각은 하지 못하고남 탓만 하고 있다.

 

‘~로 보여진다’ 같은 면피성 표현과 흐리멍텅하고 듣기 좋은 단어들을 나열하는 회의가 끝나면서 혁신이라는 구호를 외치지만그 개념을 자기 머리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회사가 정말 어려워지자 회장님은 혁신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사람을 데려온다. 그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며 회장님의 신임을 얻는 듯 했다그러나 굴러온 돌이 잘나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사람은 없다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과를 덮어씌우고 더 부풀려서 내쫓고 만다회사는 다시 나아가지 못하고 누운 배처럼 가만히 주저앉아있다.

 

느닷없이 누운 배를 세우라는 회장님의 지시가 하달된다대의명분 때문인지아니면 다른 계산이 있는건지 모른다누운 배를 고철로 처리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득이지만 물론 아무로 반기를 들지 않는다어차피 대들어봐야 남는 것도 없고누운 배를 세우지 못하더라도 회장님의 명으로 열심히 했으면 어느정도 면피는 된다.

 

조선업 업황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고소모적이고 단기적 조직 운용방식 등으로 대리급인 소설 내 화자는 시종일관 부정적이고 우울한 시각이다예전같은 고성장 개발시대에서 신입 사원을 거친 선배들과는 정서가 좀 다를 지도 모르겠다그렇다고 너네는 왜 그렇게 삐딱하고 부정적이냐고만 탓할 것도 아니지 않을까 싶다어차피 회사가 휘청이면 임원부터 말단 사원까지 겁나고 같이 흔들린다개별적으로 얼마나 느끼고 표현을 얼마나 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며 크던 작던 또는공감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순수 문학이 이런 이야기를 밀도 높게 다루는 것도 의미 있다앞으로 이런 현실의 회사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하는 작가도 나오고 작품도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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