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질문의 책 22
양승훈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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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조선산업은 한국의 자랑거리다. 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다. 특히 2000년대 중반에 중국이 고속성장하면서 전세계 원자재를 빨아들이고, 또 세계의 공장으로써 물건들을 쏟아내고 세계화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한국의 조선산업은 엄청난 호황을 맞었다.

조선산업은 귀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거제도에는 특히 조선소가 밀집해 있는데, 평균적으로 서울보다 소득수준이 높았다.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정규직 제조업 노동자로서 중산층을 이루며 살 수 있는 시기였다.

책의 초반부에는 사회학자로서 거제라는 특수한 사회환경에 대한 조사가 돋보인다. 거제도에서는 퇴근 전후에도 부서와 이름이 쓰여진 작업복을 입고 다니고, 심지어 소개팅 같은 자리에도 입고 나간다고 한다. 자부심도 있었고 고소득을 올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공장옆에서 식당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도 활기가 남쳤고 아파트나 원룸으로 세를 받는 사람들도 고수익을 만끽했다.

남자와 여자의 일이 칼같이 구별되는 상황에서 딸같은 젊은 여성들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로 유출되기 일쑤였다. 거제에서 사무직이나 간단한 일을 비정규직으로 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남성과 결혼으로 안정적인 '중공업 가족'을 만드는 걸 기대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게 계속 좋기는 어렵다. 한국이 영국과 일본으로 부터 조선산업의 왕좌를 물려받았던 것처럼 환경이 바뀌면서 순풍은 사리지고 역풍들이 생겨난다. 생산성 향상이 더뎌지고, 적절한 투자를 하지 못하게 되고, 인건비는 높아진다. 유럽은 설계쪽으로 집중하고 엔지니어링을 극대화한다. 고부가가치 선박만 만드는 쪽으로 옮겨간다. 기자재업체들을 끌어올려 수많은 강소기업들을 만들어냈다.

현재 한국 조선산업 모습으로는 중국이나 동남아 조선사와 경쟁하기 힘들어보인다. 조선산업 전체를 포기하지 않고 변신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고용이 걸려있있고 정치쟁점화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자생적이고 경제적인 해결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까 좀 걱정스럽긴하다. 이 책에서도 뚜렷한 대안제시는 없다.

조직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대졸이상의 설계인력을 많이 뽑았다고 한다. 그들이 기존 거제도 생활문화나 현장과 암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에 녹아들기 어려워 하는 모습을 보면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굳어질때 이를 변화시키기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하게 한다.

또하나 중요하게 언급되는 건 하청 문제다.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과 거제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일종의 계급문제가 발생한다. 이것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을거다. 기업에서는 해고가 어려운 마당에 고정비를 줄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런데 새로운 해양플랜트같은 고난이도 작업에 하청이 대거 투입되면서 작업은 진흙탕을 전진하는 듯한 모양새가 나타난다.

책은 크게 보면 3가지 주제를 다룬다. 거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조직원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과 조선산업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찰이다. 작은 분량이지만 다양한 관점의 내용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내부자로서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관점에서 드문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중하게 읽었다.

교훈이라고 한다면 좋을 때 좋은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대체로 좋을때 나빠질 걸 생각하지 않고 엉뚱한 투자를 하고 굳어진걸 풀어줄 생각은 못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서 대부분 좋을때 굳어진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짐으로 작용한다. 오래가는 산업과 기업은 변화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계속 구성원들과 이런 변화를 만들어나간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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