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며)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동물원의 '혜화동'이라는 노래 가사 중의 하나이다. 나는 과거 언젠가 이 노래를 들으며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있다. 일정한 나이를 지난 성인에게는 공통된 현상 중에 하나가 바로 유년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결코 짧지 않음에도 모두들 하나같이 어린 날의 짧은 순간을 그리워한다. 그 순간이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이 바로 2000년에 몰아쳤던 동문 찾기의 열풍이 아니었던가. 그 동문 찾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의 눈물어린 상봉이었다.
이 책은 장편소설이란 타이틀이 걸려있지만 소설이기 보다는 하나의 '성장 다큐멘타리'라 할 수 있다. 작가 현기영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혹은 잊고 지냈던 자신의 어린 날들을 떠올리며 타임머신 타고 만나고 돌아온 '만남후기'처럼 다가온다. 세상 참 좋아졌다! 다른 이의 아름다운 과거를 이렇게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열린 귀와 마음만 있으면 우린 현기영의 과거를 공짜로 들을 수 있다.
(죽음이 가르쳐 준 것)
작가 현기영은 10대의 전부를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보냈다. 41년도 생이니 질곡의 역사 현장에서 그는 성장했던 것이다. 20대부터 평생을 서울에서 보냈으며, 그동안 자신은 알게 모르게 고향을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던 중 평생을 언제나 원망만 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다시 그를 고향으로 불러들였으며, 아버지 시신을 그가 거두게 된다. 온기가 사라진 아버지 육신을 염하면서 그는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성기를 보고 만지게 된다. 그 때 현기영은 오열을 토했다고 하며 그 순간이 바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라고 한다. 아버지의 성기는 바로 자신의 생명이 우연에 의해 생겨난 최초의 지점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삶과 자신을 만들었던 모든 것을 찾아 추억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작가의 어린날의 경험과 고향 풍경,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솔직담백하게 서술한 것이다. 하기에 성장소설이라 불리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사람이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 또한도 자신과 죽음 사이에 존재했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또한 자신도 벌써 노인네가 된 것을 느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죽음이 있었기에 그는 겸손해질 수 있었고, 주변을 애정의 시선으로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한 개인 성장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이의 과거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 때문이다. 현기영의 어린 날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를 키워낸 것은 그의 의지와 부모님만이 아니었다. 그가 온전한 사람이 되기 까지는 그의 소꼽친구가 있었고, 가축이 있었고, 그가 심심하고 외로움 때면 찾았던 바다도 있었다. 이렇게 이 책은 사람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변의 작은 것들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잊혀진 것, 그리고 재구성 되어야 할 것)
아마도 사람들이 유년기를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그 순수함이 그립지만 알게 모르게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안타깝고 싫어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일게다. 그러함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단지 '어쩔 수 없음'의 상황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때의 마음이지 그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바삐 앞을 바라보면서 아니 앞만을 바라보도록 강요받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정신없이' 살아왔다. 바삐 살아도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목적이 무엇이 모르는 것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천천히 살피는 것은 어떠한가. 잊혀진 것들을 다시 불러보면 어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