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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산, 흰 새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2월
평점 :
품절
사실 대학에 오면서부터 분단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은 희미했다. 그도 그럴것이 조금은 경직된 수원대 운동풍토에서 좌파적 시각과 행동을 취하며 분단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생각은 알게 모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혹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로 전락한 것 같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작년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화해의 분위기는 그동안 소홀하게 생각했던 분단문제를 고민하게 했다. 아니 그런 고민 없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해야할 것 같다. 어찌보면 반강제적으로 고민해야만 했던 그 문제가 결국 50여년 동안 우리를 옭아맸던 커다란 철사줄의 하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분단은 지리적인 땅의 갈라짐, 국토의 갈라짐, 부모와 자식의 갈라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코 앞에서 막대기 부러지는 것을 목격하듯 가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렇게 가시적인 것이 분단이었다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다. 분단은 내 삶, 그리고 우리 삶을 동강내고 무참히 짓밟는 것이었다. 이것이 정말 무섭고 분단이 우리에게 전해준 가장 커다란 상처이자 아픔이다.
삶이 동강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느낄 수 있을 땐 이미 시간이 지나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외부적으로 아주 조금씩 삶을 갉아먹는 것을 인지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수십년 동안 우리네 사람들의 삶을 동강내고 비참하게 아작냈던 것은 바로 분단과 전쟁이었다.
이런 분단과 전쟁의 경험이 조용하고 순박하며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파괴하고 평생을 괴롭혔는지 보여주는 사실아닌 사실이 바로 임철우의 소설 <붉은 山, 흰새>이다. 전쟁 속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좌와 우도 모르는 작은 섬 낙일도 주민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세력이 국방군이냐 인민군이냐에 죽고 죽이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모습과 수십년간 간직해야만 했던 아픔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황석영의 <손님>이 같은 전쟁을 경험한 개인과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임철우의 <붉은 山, 흰 새>는 고향이라는 공간적 상황이 추가되면서 그 속의 집단적인 많은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이는 전쟁과 분단이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자신의 의지와 경험과는 무관하게 상대방을 무수히 적으로 만들고, 살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상대방을 기만하는 낙일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며 나무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시아버지를 죽인 '빨갱이'의 씨를 받은 귀단. 그렇게 자기 원수의 자식을 키워야만 했던 원구. 그래서 평생 아버지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무석.... 누구를 욕한단 말인가....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그 상처와 아픔을 어찌 치유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