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노신 지음, 이욱연 옮김 / 창 / 1991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내게 처음으로 '글'을 읽게 했던 책은 <빙점>이었고, 처음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은 <잃어버린 너>라는 파란만장한 연애이야기였다. 비록 미천한 삶일지라도 내게 진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해 주었던 것은 소설 <태백산맥>이었고, 인간의 삶은 그 어떤 무엇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은 소설 <토지>였다. 첫 사랑이 잊혀지지 않듯이 '첫 번째'의 감동을 안겨준 책들도 잊혀지지 아니한다.

오늘 나는 노신을 처음 만났다. 그를 첫 대면했던 나는 단호하고 명쾌한 그의 사상에 적지않게 당황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당황함 못지 않게 기절초풍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애매모호하기 이를데 없는 나의 입장 때문이었다. 과학적이지 못한 사상으로 애매모호한 삶으로 알 수 없는 미래의 이상향을 찾는 나에게 노신은 이 말을 했다.... '미친놈!! 니 입장이 뭐냐? 니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허한 것을 찾지 말고 현실에서 철저하게 현실에서 고뇌해라....' 처음 만난 노신이 나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현실'이었다. 입장 분명히 하라!!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는 노신의 사상과 노선을 작게 나마 알아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노신 자신이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노신이 쓴 글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취합하여 모아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노신은 문학가에만 머물지 않고 사상가, 혁명가 등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노신 사상의 정수가 담겨있는데 이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것과 합일하려는, 현실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신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노신은 1881년부터 1936년 까지 삶을 살았는데 이 시기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그러했듯이 중국 또한도 거대한 격랑의 시기이자 질곡의 시기였다. 내적으로는 봉건적 질서가 강하게 남았으며 외적으로는 서구의 침략이 본격화 되었으며 국민당과 공산당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기로써 그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주체적 입장을 세우기 어려운 시기였다. 이러한 질곡의 시대 한 본판에서 문학가로써 그리고 지식인으로써 평생을 보낸 노신에게 가장 첨예하게 다가왔던 것은 '절망'이자 그것을 넘고자 하는 '희망'의 구성이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 인간이 괴로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어지러운 세상은 인간에게 올바른 입장을 갖지 못하게 한다. 대신 가변적이고 환상적 변신을 일삼는 그야말로 기회주의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노신이 살았던 시대에도 수구와 반동 그리고 좌익이 대립하면서 중국인민에게 어떠한 것이든 하나를 선택하게 강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신은 분명하고도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바로 중국의 '희망'에 근거한 진보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노신이 가장 중심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일명 '성인군자'의 모습이었다. 성인군자는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지식인 계층이 현실을 도피하고 자신의 안일만을 살피는 사람들이라 노신은 규정한다. 즉 당시의 중국에서 원했던 것은 지식인들의 현실참여와 개혁이었다. 하기에 노신은 성인군자 행색을 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입장 분명히 하라!!'라고 외치고 있다. 또한 새것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개혁하는 것에 두려워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을 맹렬히 비판하며 젊은 세대들에게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에서 희망은 오직 젊은이들 뿐이라고 그는 바라보았다.

노신의 짧은 산문은 상당히 전투적인 특성이 있으며 간결하고 명확하다. 세상이 어지러운 만큼 그는 반대로 아주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글이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 것은 현실 속에서 대안과 희망을 찾으려했던 그의 노력과 사상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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