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간직하고 있는 여러 가지 꿈 중엔 이런 것이 있다. 앞에는 맑은 섬진강이 보이고 저 멀리 희미하게는 지리산이 보이는 곳에 툇마루와 사랑채가 있는 아담한 한옥을 한 채 짓는다. 그곳에서 토끼 같은 마누라와 다람쥐 같은 자식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다. 집의 담은 내 허리춤까지 오는 높이로 해서 돌담으로 만들고, 집 안쪽에는 사계절 언제나 피어나는 꽃과 나무 몇 그루를 심는다. 집 뒤쪽으로는 우리엄마와 내 자식들이 가꿀 수 있는 텃밭이 있는 것이 좋겠다. 내 마누라와 나는 실개천 아니면 섬진강에서 빨래를 함께하고 농사도 함께 짓는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는 해질녘에는 섬진강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심심하면 지리산에도 가고... 또, 내 자식들의 운동회 때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바탕 뜀박질도 하고 걸죽한 막걸리 마시며 흥겨운 뽕짝가락에 관광버스 춤도 한 판 땡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 자식을 내 어깨 위에 무등태우고 길가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한 움큼 꺾어서 눈이 맑은 마누라에게 수줍게 준다. 무엇을 크게 얻겠다는 욕심도 어떤 것을 성취해야겠다는 도전적 경쟁심 없이 자연과 더불어 내 가족과 조용하면서도 행복하게 살고싶다. 이런 것이 내 여러 가지 꿈 중의 하나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이런 꿈을 꾸어 봤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고자하는 본능적 욕구가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과 차단당하고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본능은 변질되었다. 대신 자연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바뀌었으며, 소박하게 살려는 욕구는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헬렌 니어링이 죽은 자신의 남편인 스콧 니어링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 그리고 남편과 함께 한 50년을 돌아본 이야기다. 이들 니어링 부부의 삶은 너무도 자연스러우면서도 특이한 것이었다. 스콧 니어링과 다르게 헬렌 니어링은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오랜 기간동안 풍요롭게 살았다. 그런 그녀의 삶은 스콧을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차분하면서도 예리하고 너그러우면서 강하며, 성실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스콧은 헬렌에게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삶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해준다.

대학교수였던 스콧은 모든 것을 버리고 헬렌과 함께 산골로 들어가서 손수 집을 짓고 농장을 일구며 살아간다. 제국주의적 분위기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에 살았던 스콧의 현실비판과 미국비판은 대학에서 그를 좇아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스콧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아니하며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했던 스콧은 산골 생활은 그야말로 삶과 사상이 일치된 모습이었다.

헬렌과 스콧은 언제나 일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며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들의 삶은 삶의 과정이 무엇을 얻고 쟁취해가는 과정이 아닌 사랑을 키워하고 자신의 마음을 키워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공생이 아닌 파괴와 극복의 대상으로 변하면서 자연만 파괴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도 함께 파괴되었다. 자연의 파괴는 우리 자신의 파괴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근래에 들어와서 인간은 비로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된 것이다. 그와 함께 환경보존과 복구에 대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으나 그 미래가 밝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크게 요구되는 것은 니어링 부부의 삶처럼 끊임없이 자연에서 배우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모습일 것이다. 주변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 또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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