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권하는 사회 - 주눅 들지 않고 나를 지키면서 두려움 없이 타인을 생각하는 심리학 공부
모니크 드 케르마덱 지음, 김진주 옮김 / 생각의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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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성 영재들의 고독은 대개 그녀들 안에 깊숙이 박혀 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불안과 지적·정신적 혼란, 인간관계에서의 패배감을 받아들이는 데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신경 쓰며, 혹여 부모의 기분이 상할까 걱정한다(영재들의 걱정은 그야말로 가슴을 후벼 판다!). 한편 딸보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더욱 투자하거나 딸의 성공에 그만큼의 축하를 잊고 지나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경우라면 자신이 이룬 결과에 더욱 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형제자매에 비해 불평등한 평가를 받았던여성 영재들은 남성들과의 경쟁 상황에 맞닥뜨리면 곧바로 피하는
"반사 행동‘을 보인다. 높은 권력을 잡은 여성들이 극소수라는 점도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녀들이 고독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들은모든 지적 교류와 풍부한 공유의 기회들을 차단한 채 자신에게 어 - P177

울리지 않는 직장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킨다. 그리고고통받지 않기 위해 누구와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고독을 감추기 위해 더욱 더 자신을 고립시킨다. 전문직 영재들을 대상으로 스위스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자기 확신에 있어더 큰 결핍을 보이고 스트레스에 훨씬 취약한 여성일수록, 그리고자신이 설정한 일의 목표에 대한 각오가 부족한 여성일수록, 그 여성들의 고독은 더욱 깊어진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 영재들은 유연하고 복잡한 사고 때문에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느낀다. 그리고자신의 다름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해하는 데 누구의 도움도 받지못하면 종종 공포에 가까운 감정에 빠지게 된다. - P178

이렇듯 여성 영재들이 남성들보다 대개 더 큰 고독감을 느낀다는점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녀들 역시 여느 여성들처럼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고 이를 중시하는 편이며, 친밀한 관계들을 좋아하고 이관계들을 유지하려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영재들은 남녀평등의 욕망과 자신이 남성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도 다르다는사실을 인정하는 것 사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팽팽한 갈등을 느낀다. 그 갈등이 주는 긴장 상태를 극복하고 모든 것을 하나로 엮는 것은 어쩌면 여성 영재들의 몫일 것이다. 신분, 학력, 사회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여성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고 똑같이 행동할 뿐이라는 등의 편협하고 집단적이며 여성에 대한 본질주 - P183

의적인‘ 시각이 퍼질수록 여성 영재들은 더욱 고통스럽고 단절된 경이러한 불편한 시각은 오늘날 미디어가 전파하는 완벽한 여성의회나 문화가 교묘히 만든 정신적 탄압의 대상일 뿐이라고 단언하는험을 하게 된다.
이미지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디어는 오로지 아름답고 젊은여성(젊을수록 좋다), 신체적으로 우월하고 뛰어난 연애기술을 부리며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여성,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수컷들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섹시한 여성만을 완벽한 여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직장에서의 완벽한 여성 또한 미디어가 만든이미지 그대로다. 그래서 사람들은 완벽한 여성이 강압적인 포식동물 같다고 생각하며, 그 여성 또한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러한 시각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들과의 모방경쟁뿐만 아니라여성들 사이에서도 모방경쟁을 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남성을 다양한 개인의 합이 아닌 패러다임이라 여기며, 사회 구성에 여성들을고려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입법자들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비난했던 것처럼, 남성을 억압적이고 소외감을 야기하는 총체로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남성과 여성을 왜곡하고 극도로구분해 서로에 대해 극단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무시무시하게 급변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든 다름을 부인하는 것이자, 여성들이 사회나 문화가 교묘히 만든 정신적 탄압의 대상일 뿐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 P184

고독에 관한 세 가지 오해
1. 사랑은 고독의 해독제이다.
2. 본래 어떤 관계들은 다른 관계들보다 더욱 가깝고 친밀하다.
3. 외롭다고 느낄 때는 동반자를 구해야 한다 - P229

또한 우리는 오랜 목표들을 재검토하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다시금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은 사랑받지 못한다는느낌이 주는 고통에서 거리를 두는 것으로 시작된다. 누구도 결코자신의 상황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점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의 말들을 되풀이해보라. - P231

"내 직업으로만 나를 정의할 수는 없다."
"식당에서 혼자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나는 훨씬 더 유능한 사람이다."
그러니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판단으로 "나는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라는 식으로 당신을 정의하지 말라.
마찬가지로 새로운 목표들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까지의자신의 목표와 바람, 신념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고수해오던 목표와 바람들이 지금의 내모습을 유지하게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변화를 원한다면 새로운 목표와 바람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기 위한 목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또한 쉽지는 않을 것이다. - P232

견고하게 뿌리내린 믿음은 종종 현실에서 이루어기도 한다. 가령 자신은 절대 친구들을 사귈 수 없을 것이고 직장 내에서 유익한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며 남편이나 부인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무한반복되는 악순환에 갇혀 끔찍하게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당신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고통스러운 상황에 갇혀서는 안 된다.

정서적 어려움과 고통은, 상황은 늘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들에게 자의적으로 최종 판단을 내리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리고 자신을불신하게 만드는 감정들을 통제하는 능력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게된다.
고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혼자라는 사실이나 이러저러한상황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관심을 돌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불신하게 만드는 특정 감정들을 여과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 힘을 믿고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233

우리는 불평이 자기의 실수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목표들, 예컨대 완벽한 남편, 꿈같은 결혼생활 같은 것들을 포기하는.법을 배워야 한다. - P239

타인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게끔 하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 자신의 장점과 단점, 한계 그리고 과거의 실수들을 인정해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자각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정한 자아를 상실케 하고그 풍부한 가능성을 막는 거짓자기를 버려야 한다. 백마 탄 왕자나아름다운 공주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완벽한 이미지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를 위대한 사랑에 빠지게 하려고 만들어진 책 속의 인물들일 뿐, 우리는 그들에게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가 그러한 인물을 만나거나 위대한 사랑에 빠지기에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 P241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사회적 성공의 물질적인 증거들과연결해서는 안 된다. 사랑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 우리가이룬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한다. 물론 누군가의 활동 무대가 그 사람의 특성 중 많은 부분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의 성공 가능성과 무관하게 그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연인 관계를비롯한 모든 친밀한 관계들에서 초인이 되길 바라는 것은 실패의지름길이다. 우정과 연인 관계는 솔직함과 신뢰, 공감에 뿌리를 둔다. 이러한 관계들에서는 자신의 약점들을 드러내는 것이 곧 타인을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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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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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세계의 시작에 대한 하와이 사람들의해석이었다.
"모든 것은 산호로부터 태어나고, 산호는 검은 것으로부터 태어난다…" - P155

경아가 몇 번이고 의문스러워하자, 시선은 탄력을 받아야 할 시기에 계속해서 꺾이면 안쪽의 무언가가 소멸할 수도 있다고 설명해주었지만 경아로선 미진한 느낌이었다. - P117

"그야 그런데 운이 안 맞아서, 혹은 준비가 덜 되어서 꺾이는
"누구나 꺾이잖아?"
것과 다른 사람의 악의로 꺾이는 건 다르지. 그리고 그렇게 꺾일때 다들 물끄러미 보고만 있다면 만정이 떨어진달까?" - P118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남이 잘못한 것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 - P208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 P269

"엄마 이제 안 울어?""
해림이 물었다.
"응, 안 울어. 얼른 다시 사러 갔어."
"왜 그런 걸로 울었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거야. 그 사람이 죽고 없어도, 우윤은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건조한 답을 택했다.
"속상하면 울 수도 있지."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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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잡문
안도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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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대하고 높고 빛나는 것들보다는 작고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햇빛이 미끄러져 내리는 나뭇잎의 앞면보다는 뒷면의 흐릿한 그늘을 좋아하고 남들이 우러러보고 따르는 사람보다는 나 혼자 가만히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을 더 사랑한다. - P53

달력에 아무 표시도 없는 좋은 날이 내게도 있다. 오늘이 아무것도 없이 하얗게 비어 있는 날이다. 이런날은 복 받은 날이다. 내 몸을 아무도 저리 가라 하지않고 이리 오라 하지 않는 날이다. 마음아, 너도 징징거리지 말고 좀 쉬어라. - P62

오늘은 천천히 걷다가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양말을벗어봐야지. 내 맨발이 햇볕을 빨아먹다가 마구 키득키득거리겠지. 내가 바라는 나라가 그런 나라인데, - P66

이 못난 세상을 울음으로 들이받지 않으면 여름을건너갈 수 없어 매미는 운다. - P86

매미는 ‘맴맴‘ 울지 않는다. 매미가 맴맴 운다고 자동판매기처럼 문장을 쓰는 순간 우리는 매우 관습적인영혼 없는 인간이 된다. 적어도 매미는 여름여름 운다‘라고 다르게 쓰는 것이 시적인 순간을 만나는 첫걸음이다. 그러면 귀뚜라미는 어떻게 울까? - P87

아우슈비츠의 바퀴벌레는 그곳이 아우슈비츠인 줄모른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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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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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독서 지침을 수용하지 않는다.
특히 칼라와 몸판의 색깔이 확연히 다른 셔츠 차림의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귓전으로도 안 듣는다. 인간적으로는정이 가지만 문학 취향이 의심스럽거나 질색인 사람이 빌려주거나 선물하는 책은 사절하고 싶다. 열네 살 때부터 줄곧 경멸해 - P32

왔던 책을 친구가 자기 인생을 바꿔놓은 책이라면서 건네주는불편한 순간이 나는 겁난다. 특정 도서에 집착하는 사람들은그 책이 아무리 자기들에게 의미가 있을지언정 어떤 이에게는『어느 팬의 기록(A Fan‘s Notes)』이나 연초 도매상(The Sot-WeedFactor)」이나 『어린 왕자』나 『듄』을 즐겁게 읽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 못한다. ‘천국에서 마주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여섯 사람을 만나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할 1001곳‘ 유의 책은 더욱더 어림없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악명 높은 동독 국가보안부(Stasi)가 나서면 모를까, 안 될 일이다. - P33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속 정체불명의 만찬실에서 작가와 사적으로 영성체를 나눈다. 한번은 어떤 친구가 자기는솔 벨로가 아주 오래전부터 주위에서 얼쩡대던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그래서 자기에게 뭔가 한 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의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느끼는 기분이 딱 그렇다. 조기 은퇴를 고려 중인 노년층이라면일단 『리어 왕을 읽어봐야 한다. 어린 여자와 결혼할 생각을하는 중년 남성은 먼저 몰리에르를 참고하시라. 사랑이 영원할거라 믿는 젊은이라면 뭔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전에 폭풍의 언덕』을 슬쩍 봐주면 좋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책을 통해 직접 그들에게말을 건다고, 나아가 그들을 돌봐주고 치유해준다고 느낀다. 그들은 종종 작가가 성체를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사람들은 항상 이 작가 혹은 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를대지만, 사실 특정 주제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작가가 글로 정확하게 옮겨주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그들은 작가를 일 - P38

종의 영매처럼, 무언의 존재에게 목소리를 빌려주는 역할로 본다. 내 입장은 다르다. 나는 작가들이 내 생각이 아닌 말, 어떤면에서는 내가 아예 생각조차 못할 말을 한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미국 최고의 여류 시인 운운하면서 에밀리 디킨슨에게 접근하려면 무릎을 꿇고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생각도그렇다. 위대한 작가들이 하는 말은 참으로 아름답기에, 그들의말을 반복하는 바로 그 행위가 삶 자체를 한결 아름답게 한다.
로렌스 더렐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사는 도시가 세상이 된다고 했다. 앨리스 먼로는 기적을 믿는 사람들은 정말로기적이 일어날 때 법석을 떨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다시 만나면 미소를 지을 겁니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이렇게 헤어짐이 잘하는 일이지요." 이건 셰익스피어의 문장이다. 작가를 앞에 두고 "당신은 내가 생각하던 바를 콕 짚어 말해주었어요!"
라고 떠드는 사람은 바보다. 그런 사람이 대략 널리고 널렸다. - P39

다. 책이 늘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진 않아도, 확실히누군가는 가고 싶어 할 곳으로 데려다준다. 책에 환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현실에 만족 못 하는 사람들이다. - P39

북클럽 회원들이 공유하는 독서 경험은 내밀하지가 않다. 북클럽 참가자는 책에 대해 자신과 아주 똑같이 느끼는 사람들하고 연결되기를 원한다. 독서 토론회는 사실 독서와 거의 무관하다. 이런 토론회에서 좋은 책을 좀체 선정하지 않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토론 참가자들은 만장일치를 원하지만 좋은 책은만장일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좋은 책은 다툼, 혼란, 칼부림, 혈투를 부른다. - P75

속독은 게으름뱅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이다. 점수기록하는 사람도 없는데 권수가 왜 중요한가. 그러한 노력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보려고 마라톤에 뛰어들어 코스 절반까지 잘 와놓고 왜 이런 바보짓을 할까 깨닫는 것과 내처 비슷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중간 과정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매일첫 페이지에서 박차고 나가 그날 밤에 마지막 단어까지 해치운다는 게 얼마나 상쾌한지. 나는 실전을 수행하면서 로버트 네이선의 『제니의 초상』,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 앰브로즈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같은 고전들을 읽었다. 뮤리엘 스파크의 신랄한 소설 세 권, 조이스 캐럴 오츠가 속성으로 써낸소설 두어 권도 읽었다. 특히 『블랙 워터』에서 저자는 채퍼퀴딕섬 사건‘을 물에 빠져 죽은 피해자의 시점으로 그려냈다.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 세 권, 폴라 폭스의 참혹한 회고 『절망의그림자(Desperate Characters), 피터 테일러의 『재력 있는 여자(A - P129

도 읽었다. 로리 무어, 수전 마이노, 레이놀즈 프라이스, 퍼트리Woman of Means)』, 토머스 키닐리의 『지미 블랙스미스의 노래,
샤 하이스미스, 배리 해나 같은 유명 작가들의 단편집과 팀 패리시, 에바 파이지스, 마크 리처드, 브래드 왓슨, 크리스틴 슈트,
존 비그네처럼 조금 덜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패리시의『레드 스틱 맨과 비그네의 『고문관 견습생은 특히 값진 발견이었다.
나는 트루먼 커포티의 나른한 첫 소설 『서머 크로싱, 테네시 윌리엄스의 황량한 첫 소설 『로마의 애수(The Roman Springof Mrs. Stone)』, 월리스 스테그너의 놀라운 데뷔작이자 역작 『리멤버링 래프터(Remembering Laughter)』도 읽었다. - P130

나는 진지한 독자, 요컨대 강박적인 독자라면 모두 머릿속에서 착착 돌아가는 시계나 미터기 따위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지 어렴풋이 생각해서 그에 맞게 독서습관을 잡는다. 일단 나처럼 예순을 넘으면 대(大)플리니우스를읽을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는 따져볼 여지가 있지만 펄 벅에 할애할 시간은 결단코 없다. 이때부터는 무슨 책을 읽든지 그게 이승에서 읽는 마지막 책이 될 수 있다. 대지를 마지막 책으로 삼을 순 없지 않은가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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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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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위험을 예비할 수 있다고 하자. 그 위험에 대해 사랑하는 이에게 시급하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말을 잃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렇게 말이 사라진 자리에 놓인 것이 시라는 생각을 한다. 말로 표현되어 있지만전혀 다른 배열을 가지고 있기에 통상적인 규율 아래의 소통이 불가능해지고 다만 언어를 구축할 뿐이라고, 말 이외의 모든 것, 이미지, 소리, 촉각, 온도, 질량감, 부피, 이동성등을 성취해내 전달한다고. 그런 말없는 가운데 말하는 시의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나는 강성은의 시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Lo-fi』, 우리말로 바꾼다면 저음질‘이 될 수 있을 제목의 그의 세번째 시집을 전철과 비행기에서, 배를 타고 들 - P185

어가는 제주의 섬에서 아주 예민한 기척까지 놓치지 않겠다.
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때는 그의 시가 간절한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읽는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의 간절함이 그런 독법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또는둘 다일지도.
나는 광장의 침묵 속에 한참 서 있다가 광장을 가로질러 작은 샛길로 들어갔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과 처마를 지나 불 켜진 창을 지나 교회와 상점들을 지나자 또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 어둠 속에 시체들이 줄지어누워 있었다 그들은 내 가족과 친구들과 꿈속에서 보았던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끝에는내가 누워 있었다 나는 나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그는 뜨거웠고 내 손은 차가웠다 죽어 있는 것은 나였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이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구나 매일 밤 모든 길은광장으로 이어졌다.
- 강성은, 「밤의 광장」 『Lo-fi, (문학과지성사, 2018)에서 - P186

내 얘기를 들은 한의사는 자기 역시 누군가에게 들은 것이라며 ‘유이책보예용‘의 원칙을 알려주었다. 가수 중에 유이가 있으니까 그 이름으로 기억하면 더 쉬울 거라는 도움말도주었다(하지만 나는 진찰을 하는 그 삼십 분 정도의 시간에도 까먹어 나갈 때쯤 다시 물었다). 그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 - P40

람이 해야 할 여섯 가지 행동에 관한 원칙이었다. 그러니까,
유감을 표시하고 왜 그랬는지이유를 말하고 그것에 대한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고예방을 약속하고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비로소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여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 있다면 용서를 행할 수가 없다.
우리 대화의 마지막은 다시 먹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식사는 잘하고 있어요?" 하고 그가 물었고, 스트레스를 풀어야한다며 간장게장에서 초밥까지 맛집들을 전전해온 나는 그러나 어쩐지 쓸쓸해져 "맛있는 건 많이 먹는데 영 입맛이 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무엇보다 좋은 쌀을 사고 다양한 종류의 쌀과 잡곡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
현미나 수수 외에도 5분도미, 7분도미 같은 종류들까지. 그 - P42

렇게 해서 좋은 쌀로 밥을 지으면 묵은 김치를 들기름에 들들 볶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식사가 되니까.
들기름에 볶은 김치와 아주 잘 지어진 밥, 상상만으로도입맛이 도는 듯했다. 그건 억울한 사람들을 차마 보지 못하는 여자아이와, 갈등을 도무지 만들고 싶지 않은 또다른 아이가 만나서 한끼 먹기에 좋은 메뉴이기도 했고, 그렇게 같이 외워보는 유이책보예용 역시 모두를 어떻게든 지켜줄 것같은 마법의 주문이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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