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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봄이 오는 시간 속에서 이 소란과 시끄러움으로 봄이 봄같이 느껴지지 않는 요즘을 보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병보다 무서운 것이 분열과 갈등이었습니다. 위급한 문제 속에서 사회의 갈등을 접하게 되어 마음이 점차 식어가는 나날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읽어보았습니다.
정재찬 작가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여러 시들을 소개해 주고 그 시에 대한 풀이를 어렵지 않게 설명해 주었던 책이었는데 무척 좋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그 책 덕분에 보석 같은 반짝이는 시들을 새롭게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즐거웠던 기억을 안고 이 책 또한 그런 시간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책의 책명인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서 살짝 엿볼 수 있듯 이 책은 인생을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입니다. 그 주제에 맞는 시들을 첨부해서 더욱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그리고 시를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에는 두 개의 소주제로 구성이 되어있네요. 그럼 어떤 것들이 인새이라 부르는 것들인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생업, 노동, 아이, 부모, 몸, 마음, 교육, 공부, 열애, 동행, 인사이더, 아웃사이더, 가진 것, 잃은 것. 이렇게 총 12개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예전에 감탄하며 읽었던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 단어>와 그 구성이 비슷하기도 한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설명으로 시가 활용되었다는 점은 독특하지만 임팩트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평소 시에 대한 책들을 가끔씩 읽는데 그런 책들은 이미 보았거나 유명한 시들을 수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에서도 일부는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제가 미리 알고 있었던 시가 두 편 말고는 모두 새롭게 알게 된 시들이라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특히 최근의 현대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시인 개개인의 시집을 잘 보지 않았던 저에게 새로운 시각을 느끼게금 해준 책이 이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위의 주제 중 '몸'과 '마음' 부분이 가장 집중력 있게 읽어보았던 주제였네요. 아마도 제 개인의 관심사와 맞물려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의 감정에 대한 주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제 자신 또한 돌아보게 되었네요.
감정은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자꾸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검열하고 외면해왔습니다. 그렇게 잉태된 감정들을 어떻게 다뤄내느냐가 이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초현대사회는 개인에게서 이러한 감정을 오히려 박탈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탈감정 사회>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 내 감정인가?"
매스컴이나 미디어는 내 감정을 조절하고, 아예 감정적 반응을 그들이 만들어 제공해줍니다. 뉴스앵커는 사건을 보도하며 "분개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라고 이미 내 감정을 판단해줍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 주목해보십시오. 어느 샌가부터 우리는 그 자막에 따라 자동적으로 그에 걸맞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내 감정적 반응을 미리 포장해서 넘겨주는 셈인 거죠.
(p. 146)
이 책을 시작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시는 유리창과도 같습니다. 닫힌 문으로는 볼 수 없던 바깥의 풍경들을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시를 통해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가령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읽게 되면 길을 걷다 보게 되는 이름 모를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그 꽃들이 참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를 통해 감정에 더 예민한 사람이 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며 해보았습니다. 이 책에는 다양하고 좋은 시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를 첨부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이 책은 봄꽃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은 책이었네요.
찬밥
문정희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 <<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 (민음사, 2004)
(p. 124)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