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 산책 -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윤재웅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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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생활이 무너졌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덕분에 다시 느껴볼 수 있기도 했네요. 봄꽃은 지천으로 피어나는데 그 꽃들을 만나러 가지 못해 답답하기도 합니다. 일상은 물론 좋아하는 취미 생활인 여행도 힘들어졌지요. 가끔은 창밖을 보며 먼 곳을 여행했던 옛 추억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의 골목을 돌아다니며 지냈던 소소하지만 소중한 시간이었지요. 요즘, 해가 다시 쨍하고 비추는 날에는 유럽 여행의 날들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예전 어떤 책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몇 가지 큰 사건들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의 사건이 유럽의 르네상스의 시작이었지요. 그 르네상스는 세상의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바꾼 생각의 전환 이자 대 변화였습니다. 그로 인해 예술과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죠. 그런 르네상스의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이야기가 몇 해 전부터 사회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와 관련된 책과 강의 등도 많아졌는데 인문학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잘 살기 위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부자가 되는 운동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인문학이 꼭 지역에 국한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배울 점이 있고 사랑이 있고 삶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 <유럽 인문 산책>이라는 책명을 보고 유럽의 인문에 대한 내용이 궁금해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산책이라는 책명처럼 산책하듯 보았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인 윤재웅 님께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도시들을 여행하고 그에 대한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라는 것이 단순한 여행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것이 아닌 여행 혹은 산책 속에서 인문학적 발견을 나타낸 책이었습니다. 로마의 돌길을 걸으며 돌길이 생겨난 배경과 역사 등을 알려주는 그런 형식이죠. 그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림, 책, 영화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점이 흥미롭지만 저에게는 무척 좋았습니다. 생각나는 이야기로는 시칠리아에서 영화 <시네마 천국>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저자가 걸으며 적은 글들 또한 제 개인의 관심사와 맞아 좋았습니다. 특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청년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눈여겨볼만한 점이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청년들에 대한 그 따뜻한 시선과 마음은 그 마음과 글만으로도 응원과 위로가 되어주지는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 순례길을 꿋꿋이 걸어나가는 청년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 책에 나오는 세 나라를 저도 가보았기에 더욱 관심 있게 보았네요. 물론 책에 소개된 일부의 도시만 가보았지만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그 도시들과 그 추억들이 말이지요. 그곳에서 나는 어떤 인문을 발견한 게 있을까 잠시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다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선물이자 인문학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만약 다시 유럽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산책하듯 걷고 주변의 것들을 유심히 보되 따뜻하게 보는 것. 그리고 그곳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은 공부를 하는 것. 그런 여행은 잔잔하게 마음 안으로 스며들 것만 같습니다. 시칠리아에 가서 <시네마 천국> 영화를 보고 싶군요.

 

 

별 총총한 밤, 이곳 해변에서 <시네마 천국>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토토의 친구이자 스승인 극장 영상기사 알프레도는 "삶은 영화 같지 않아. 인생은 훨씬 더 힘겹단다"라며 청년이 된 토토에게 떠나라고 말하지요. 토토는 세계적인 감독이 되어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30년 만에 시칠리아로 돌아옵니다. 알프레도가 남긴 마지막 유산. 신부님의 검열을 피해 편집해놓은 역대급 영화의 키스 장면들을 보면서 삶의 어려움 가운데도 아름다움은 꽃핀다는 사실을 격하게 발견하지요. 30년 전 영상 기사가 30년 뒤의 명감독에게 남긴 위대한 선물입니다. 인생은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하지만 때로 영화보다 아름답기도 합니다.

(p. 102)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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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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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 시장은 에세이 장르의 강세처럼 보입니다. 많은 에세이가 나오고 많은 독자들이 읽지요. 에세이가 많이 나와 처음 알게 되는 작가들의 책들이 많고 또한 비슷한 주제의 글이나 책들이 많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데는 좀 더 어려움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 중에도 유독 믿음이 가는 에세이 작가들이 있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그런 작가들이 있을 텐데 저는 약 4분 정도의 그런 작가들을 가지고 있고 그중 한 분이 정여울 작가입니다.

 

정여울 작가의 책을 전부는 아니지만 꽤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게 된 이유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정여울 작가의 책이었기 때문이죠. 간단한 내용도 모르지만 작가의 이름을 보고 책을 들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20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재의 20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놓은 에세이였습니다. 이런 간단한 내용이라도 알았다면 이제 30대를 훌쩍 지나가고 있는 저는 이 책을 들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 내용을 전혀 몰랐던 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책들은 이전에도 많았고 아마도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책들은 역시 작가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에 따라 느껴지는 바도 천차만별 큰 차이를 보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로 정여울 작가의 책이었기에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구성 주제가 많았는데 그 점 또한 독특했습니다. 이 책에서 20대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주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방황, 소통, 타인, 배움, 정치, 가족, 젠더, 죽음, 예술, 질문.

주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주제들입니다. 더 적은 주제로 깊게 들어가는 책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폭넓게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는 책 또한 청춘들에게는 위로나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몇 개의 주제들은 주제의 제목만으로도 청춘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탐닉>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네요. 저도 아주 열심히 했던 것들이 있었고 지난 그 과거의 날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의 청춘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라고 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자기 자신을 위한 <탐닉>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글이었습니다. 특히 글이 시작하기 전 주제에 맞는 명언들을 적어 놓은 구성이 있는데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그것들을 메모한 글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인지 30대이지만 꽤 공감이 가거나 재밌었던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아마 지금의 20대들이 본다면 저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책의 느낌이 다가오지 않을까 예상해보네요. 코로나로 여행이나 모임이 힘든 요즘, 좋은 책으로 좋은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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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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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의 봄 같으면 매화를 구경하러 이곳저곳 바쁘게 다녔겠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한숨지을 때가 많네요. 봄이 왔지만 뒤숭숭한 사회의 분위기 때문인지 실제로 봄이 체감되지 않아 조금 안타까운 날들입니다. 이렇게 직접 여행을 갈 수 없을 때면 여행 책을 슬며시 들게 되네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책명을 보고 선뜻 손이 가 읽어 보았던 책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입니다.

 

이 책은 김윤성 님이 적으신 글입니다. 책의 작가 소개란을 보니 전문작가는 아니시고 22년간 창원 시청에 근무를 하며 30여 개국 100여 개의 도시를 여행한 경험과 추억을 가지고 책을 적으신 것 같습니다. 짧은 여행뿐만 아니라 3개월 뉴질랜드 연수, 1년 더블린 유학 생활도 있으시다고 하니 여행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 살아보기 또한 경험해보신 분이네요.

책의 구성은 각 장을 따로 나누지 않고 22개의 개별적인 여행 이야기를 적어놓은 구성입니다. 22개의 여행 이야기는 아마도 22년간 창원 시청에 근무를 했던 것과 연관을 시켜 그렇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각 이야기는 짧은 여행에서의 이야기나 에피소드, 거기에서 느꼈던 저자의 생각과 추억이 잘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글의 중간이나 끝에는 현지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 여행의 느낌을 더욱 살려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네요. 책 속에 담긴 여행지의 이야기들을 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제가 다녀왔던 곳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망을 했냐고요? 아닙니다. 그 덕분에 더욱 관심 있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책의 초반에는 지형적으로 유럽에서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중간에는 남미의 볼리비아, 그리고 후반부에는 아시아와 캐나다가 나오는군요. 약 100개의 도시를 다니셨다고 했는데 이렇게 추려내는 것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기간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던 날들 속에 즐거운 이야기와 에피소드, 애틋한 추억들 또한 참 많았을 텐데 이렇게 요약을 해서 그중 일부만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점을 작가님은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는 여러 도시들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저는 볼리비아의 이야기가 특히 좋았습니다. 직장인들의 여행에서는 남미는 비교적 가기가 힘든 곳인데 다녀오신 점이 독특했고 그것과는 별도로 책에 나와있는 이야기들도 좋았네요. 우유니 사막 투어를 할 때 투어 지프 운전을 하던 껄렁한 볼리비아 청년의 이야기가 저를 슬쩍 미소 짓게 했습니다. 저 또한 예전 여행에서 그런 기억이 있어 그때 그 친구가 생각이 나기도 했네요.

봄은 여행의 계절이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여행이 힘든 봄입니다. 멀지 않은 가까운 공원에서 봄꽃들을 보며 이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겁지 않은 주제와 적당한 낭만이 깃들어 있는 책이었네요. 이 책을 읽으니 몽골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ㅎ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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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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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봄이 오는 시간 속에서 이 소란과 시끄러움으로 봄이 봄같이 느껴지지 않는 요즘을 보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병보다 무서운 것이 분열과 갈등이었습니다. 위급한 문제 속에서 사회의 갈등을 접하게 되어 마음이 점차 식어가는 나날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읽어보았습니다.

 

정재찬 작가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여러 시들을 소개해 주고 그 시에 대한 풀이를 어렵지 않게 설명해 주었던 책이었는데 무척 좋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그 책 덕분에 보석 같은 반짝이는 시들을 새롭게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즐거웠던 기억을 안고 이 책 또한 그런 시간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책의 책명인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서 살짝 엿볼 수 있듯 이 책은 인생을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입니다. 그 주제에 맞는 시들을 첨부해서 더욱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그리고 시를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에는 두 개의 소주제로 구성이 되어있네요. 그럼 어떤 것들이 인새이라 부르는 것들인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생업, 노동, 아이, 부모, 몸, 마음, 교육, 공부, 열애, 동행, 인사이더, 아웃사이더, 가진 것, 잃은 것. 이렇게 총 12개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예전에 감탄하며 읽었던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 단어>와 그 구성이 비슷하기도 한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설명으로 시가 활용되었다는 점은 독특하지만 임팩트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평소 시에 대한 책들을 가끔씩 읽는데 그런 책들은 이미 보았거나 유명한 시들을 수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에서도 일부는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제가 미리 알고 있었던 시가 두 편 말고는 모두 새롭게 알게 된 시들이라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특히 최근의 현대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시인 개개인의 시집을 잘 보지 않았던 저에게 새로운 시각을 느끼게금 해준 책이 이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위의 주제 중 '몸'과 '마음' 부분이 가장 집중력 있게 읽어보았던 주제였네요. 아마도 제 개인의 관심사와 맞물려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의 감정에 대한 주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제 자신 또한 돌아보게 되었네요.

 

감정은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자꾸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검열하고 외면해왔습니다. 그렇게 잉태된 감정들을 어떻게 다뤄내느냐가 이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초현대사회는 개인에게서 이러한 감정을 오히려 박탈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탈감정 사회>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 내 감정인가?"

매스컴이나 미디어는 내 감정을 조절하고, 아예 감정적 반응을 그들이 만들어 제공해줍니다. 뉴스앵커는 사건을 보도하며 "분개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라고 이미 내 감정을 판단해줍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 주목해보십시오. 어느 샌가부터 우리는 그 자막에 따라 자동적으로 그에 걸맞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내 감정적 반응을 미리 포장해서 넘겨주는 셈인 거죠.

(p. 146)

이 책을 시작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시는 유리창과도 같습니다. 닫힌 문으로는 볼 수 없던 바깥의 풍경들을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시를 통해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가령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읽게 되면 길을 걷다 보게 되는 이름 모를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그 꽃들이 참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를 통해 감정에 더 예민한 사람이 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며 해보았습니다. 이 책에는 다양하고 좋은 시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를 첨부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이 책은 봄꽃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은 책이었네요.

 

 

찬밥

 

문정희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 <<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 (민음사, 2004)

(p. 124)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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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의 산책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사색
에디스 홀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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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철학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름은 모두 들어보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의 철학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히 산파술, 이데아, 윤리학 같은 주요 철학에 대한 개요만 아주 얇게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쩌면 니체, 칸트, 샤르트르 같은 현대 철학자들보다 더 모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네요(물론 현대 철학자들의 철학도 아주 조금 알지만 말이죠). 문득 이 책 표지에 적혀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사색'이라는 문장에 이끌려 이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이 책은 에디스 홀이라는 영국 작가의 책입니다. 저자는 스무 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세계관을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 그 철학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철학과 태도가 그녀를 매혹시킨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열 번의 산책이라는 책명처럼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중요한 10가지에 대한 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풀이하고 해석하고 안내해주는 책이었습니다. 그 10가지의 내용은 행복, 잠재력, 의사결정, 의사소통, 자기 인식, 의도, 사랑, 공동체, 여가, 죽음의 운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두 보시면 알 것 같이 삶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중요한 것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들어가며>라는 프롤로그와 같은 부분으로 이 책이 시작되는데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좋았네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과 느낌을 알려주는 내용이 있었고 그 내용은 제 생각과 조금 달랐기에 인상적이었습니다. 옛 시대라고 하면 개인보다는 나라나 국가, 단체의 행복을 우선시할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제 편견과는 달라 놀랐고 그가 생각하고 주장했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덕을 쌓고 악을 멀리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동양 고전의 한 내용을 보는 듯해서 새롭기도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쌓고 악을 멀리함으로써 스스로 선을 위해 노력한다면, 심리적으로 행복한 상태가 '올바른 습관'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었다. 가령 자녀를 따뜻한 미소로 대하기 시작할 때,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노력은 무의식적 차원에서 습관으로 서서히 자리 잡는다. 어떤 철학자들은 도덕적인 삶이 비도덕적인 삶보다 정말로 더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덕 윤리'는 이후 철학 사조에서 부활했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p. 12)

 

이 책에서는 여러 내용의 보충 설명으로 그에 대한 인용과 사례들을 옛 서양 문학의 내용에서 많이 가져오는 것이 또 특색 있었는데, 제가 그런 부분을 잘 알지 못했기에 충분히 이해하거나 확실히 느껴지지 않아 그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의 주요 철학은 이 시대에서도 많은 부분 동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기도 했지만 여성과 노예에 대한 주장은 예외이고 말이지요. 이 책에서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한다라는 정답 같은 것은 당연하게도 없었습니다만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 한 부분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기에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책명 때문인지 이 책을 들 때마다 이상하게 산책이 하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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