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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O
매슈 블레이크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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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프로그램을 통해 체념증후군이라는 걸 알게되었다. 십수년간 스웨덴 난민 아동 중 수백명이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이한 혼수상태는 일반 가정의 아동이 아닌 난민의 아동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처럼 보였는데 특정집단이나 문화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질병을 문화고유장애라고 한댄다. (체념증후군이 궁금하신 분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체념증후군의 기록“ 참조)

안나O는 바로 이 체념증후군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두 사람을 죽이고 잠들어버려 깨어나지 않는 안나 오길비를 추적하며 과연 누가 왜 죽인것이며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수면 중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범죄인가 질병인가라는 윤리적 문제까지 곰곰 생각하느라 책 읽으며 머리가 빠개지도록 끝까지 아리송하고 아이러니하고 의문이 남는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은 체념증후군으로 4년째 수면에 빠져있는 살인자(라고 알려진) 안나O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수면클리닉의 수면전문가 프린스 박사에게 맡겨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프린스 박사는 사법기관에서 의뢰를 받아 자문하는 법심리학자이기도 하다.

프린스 박사는 자신이 연구한 논문을 토대로 감각자극을 이용해 안나를 깨우는 시도를 하며 그러는 동안 안나 개인의 과거를 추적한다. “과거는 현재를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그러다 4년 전 안나가 살인을 저지를 무렵 이십년 전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인 셀린 터너 사건에 몰두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셀린 터너는 의붓아들 둘을 죽이고 재판에 섰지만 몽유증상 중 벌어진 수면장애로 판단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된 여성이다.

안나에게도 몽유병이 있었는데 안나는 셀린 터너의 취재를 자신의 출판사업의 부흥을 위한 컨텐츠이자 자신의 몽유병을 탐구하고자 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소설의 구성은 안나O 사건과 셀린 터너 사건이 겹치며 복잡해진다. 작가가 흘린 단서들을 꼼꼼이 수집하며 인물들을 끝없이 의심하고 추리하고 어느 순간 눈썰미있게 실마리를 눈치 챘다고 믿었는데 끝내 믿음과 추리는 배신 당한다.
너무 지적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단순하지가 않다. 신화와 가십이 섞여있고 꿈과 현실이 혼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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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의 두뇌는 우주시대의 두뇌이지만 동시에 태곳적 공포를 간직하는 원초적 두뇌이기도 하다. 잠은 AI로도 대체할 수 없고 꿈은 원형의 공포가 그대로 남아있는 장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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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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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태기에는 역시 스릴러물이 최고의 치료제인듯하다. 가독성 좋고 몰입감 높고 단순한 스토리에 캐릭터는 명료하고 군더더기는 확실히 생략되었다.

골치가 아플때 책 속으로 도망쳐 잠시 그 가상의 스릴러 세계에 머물며 모든 캐릭터를 의심하고 작가적 트릭이 무엇일지 추론하며 내게 주어진 도피처를 충분히 만끽하기에 좋았던 책. 단점이라면 “움~ 짧아” 😂
좀 더 읽고 싶은데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달아 버렸다.

소설 속엔 이사할 새 집을 알아보러 대저택에 막 도착한, 갓 임신한 신혼부부와 그 저택의 주인이었던 정신과 의학박사와 그의 환자들이 등장한다.
폭설에 외딴 대저택에 갇혀버린 부부가 집 안에서 겪는 심리 공포와 집 안 비밀장소에서 발견된 녹음 테이프로 인해 조명되는 과거들.

자기애성 인격 장애와 강박 장애 중 더 나쁜 건 뭘까.
“본인의 능력과 업적을 과장하고, 타인으로부터 존경받길 갈망하고,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와 모두가 자기를 해치려 든다는 피해 망상장애와 강박 장애. 병적 진단을 받지 않았어도 누구나 때에 따라 이런 양상들이 순간적/일시적으로 튀어나올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몰론 당사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제목이 never lie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forever lie다. 하긴 거짓말 안 하고 살기가 더 힘들긴 하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거짓말들을 모아 자신의 사회적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구축하니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참으로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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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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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라는 추상적 개념과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살면서 증오의 감정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이 증오라는 감정은 부정적 감정이며 타인에게나 자신에게나 해롭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지만 이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 지점에 대해 고민한 책이다.

저자는 법정신의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증오를 개념 정의하고 그 증오가 개인적/사회적으로 분출되는 형태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철학자나 문학작품에서 증오를 인용한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증오심의 뿌리를 찾아가보면 그 안엔 자기혐오가 있고 자기 혐오 이전엔 죄책감이 있다고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증오심의 발현 즉 테러나 제노포비아는 한편으론 타인을 배척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생존전략이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적 차원의 증오와 사화적 차원의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는 증오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소통, 공감, 이해를 통해 증오를 줄이고 차별과 편견을 깨기 위한 교육과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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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부닥치는 사소한 미움과는 차원이 다른 증오의 밑바탕에 무엇이 있었던건지 알면 증오심 때문에 스스로 파괴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증오심 때문에 괴롭다면 그것이 두려움과 불안 때문인지 편견과 무지 때문인지 상처와 좌절 때문인지 자신의 내부를 잘 들여다 보아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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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좀 환상하는 여자들 4
라일라 마르티네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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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할머니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손녀와 할머니가 번갈아 화자가 되어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 ”집“은 단순한 거주지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역동적이고 대대로 이 집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감정에 동기화되어 있다.

읽는 내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연상되었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세대를 이어오며 고독과 고립이 지속되지만 <나무좀>에서는 세대를 이어오며 여성들의 원한과 분노와 증오가 대물림된다.

백년의 고독이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세계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즉 독재, 식민주의,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나무좀>에서는 스페인 내전으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독재와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그려낸다.

할머니와 손녀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원한과 증오와 분노가 서려 있는데 그것은 가난과 고용주들에 대한 분노, 남성들의 폭력과 학대에 따른 원한, 대물림되는 운명에 대한 증오이다.

이 집안 여자들이 4대에 걸쳐 당한 수모와 학대와 폭력으로 인해 내면화된 한과 증오는 나무좀처럼 그녀들의 영혼을 좀 먹고 그 집을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귀신이 되게 한다. 그야말로 집사람… 🫥

만약 이대로 원한과 증오가 맺힌 채로 소설이 결말이 났다면 굉장히 허탈했을테지만 할머니와 손녀는 자신들의 해로운 운명의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결행한다.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그녀들의 대물림되었던 원한의 역사를 그녀들의 손으로 단절시키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가능성을 암시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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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열아홉 해의 생일선물과 삶의 의미
제너비브 킹스턴 지음, 박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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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푸근함, 안정감, 안락함, 따듯함과 함께 슬픔, 애잔함, 애틋함, 그리움을 동반한다.

이 책 속에는 이 모든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나는 책을 펼치기 전 눈물샘 터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책을 펼쳤다.

“엄마가 죽고 그 분홍색 판지 상자는 내 방 한쪽에 내내 놓여있었다.

포장 겉면에는 엄마의 단정한 손 글씨로 적절한 때가 되기 전에는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
이제 상자에는 세 개의 물건만 남아있다.”


엄마는 딸이 서른 살이 되기까지 매해 돌아오는 생일과 입학과 졸업식, 운전면허취득일, 약혼, 결혼, 첫 아기 출산과 같은 특별한 날을 기념허는 선물과 편지들을 남긴다.

딸이 엄마 없이 성장하며 세상에 나가 어떤 중요한 문턱을 넘어 세상에 한 발짝씩 나아갈 때마다 축하해 주는 선물이다. 그 선물들은 죽어서도 딸의 인생과정에 함께 동참할 것이라는 엄마의 약속이자 애달픈 전언들인 것이다.

마치 성장소설과도 같은 이 회고록은 인생은 작별의 연속이라는 것과 작별함으로써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엄마와 작별하고 아빠와 작별하고 오빠와 떨어져 지내고 거의 생명체처럼 여기는 집과 작별하고 그렇게 유년시절을 힘겹게 떠나보내고 온전히 작별한 후에야 저자는 독립된 자아로 홀로서기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동반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얻게된다.

저자인 제너비브가 엄마를 일찍 여의고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있을지언정 결핍감에 대한 구절은 책 속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지만 아빠의 사랑 혹은 엄마의 사랑에 대한 결핍감을 느끼는데도 말이다.


프롤로그에 그녀에게 이제 세 개의 선물만 남아있다는 마지막 문장에 골이 띵했다. 아마도 제일 마지막 상자는 첫 출산일 것이라 예상되는데 그 시간을 저자는 어떠한 감동의 크기로 맞이할런지 감히 상상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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