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프로그램을 통해 체념증후군이라는 걸 알게되었다. 십수년간 스웨덴 난민 아동 중 수백명이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이한 혼수상태는 일반 가정의 아동이 아닌 난민의 아동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처럼 보였는데 특정집단이나 문화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질병을 문화고유장애라고 한댄다. (체념증후군이 궁금하신 분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체념증후군의 기록“ 참조)안나O는 바로 이 체념증후군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두 사람을 죽이고 잠들어버려 깨어나지 않는 안나 오길비를 추적하며 과연 누가 왜 죽인것이며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수면 중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범죄인가 질병인가라는 윤리적 문제까지 곰곰 생각하느라 책 읽으며 머리가 빠개지도록 끝까지 아리송하고 아이러니하고 의문이 남는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은 체념증후군으로 4년째 수면에 빠져있는 살인자(라고 알려진) 안나O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수면클리닉의 수면전문가 프린스 박사에게 맡겨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프린스 박사는 사법기관에서 의뢰를 받아 자문하는 법심리학자이기도 하다. 프린스 박사는 자신이 연구한 논문을 토대로 감각자극을 이용해 안나를 깨우는 시도를 하며 그러는 동안 안나 개인의 과거를 추적한다. “과거는 현재를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그러다 4년 전 안나가 살인을 저지를 무렵 이십년 전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인 셀린 터너 사건에 몰두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셀린 터너는 의붓아들 둘을 죽이고 재판에 섰지만 몽유증상 중 벌어진 수면장애로 판단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된 여성이다. 안나에게도 몽유병이 있었는데 안나는 셀린 터너의 취재를 자신의 출판사업의 부흥을 위한 컨텐츠이자 자신의 몽유병을 탐구하고자 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소설의 구성은 안나O 사건과 셀린 터너 사건이 겹치며 복잡해진다. 작가가 흘린 단서들을 꼼꼼이 수집하며 인물들을 끝없이 의심하고 추리하고 어느 순간 눈썰미있게 실마리를 눈치 챘다고 믿었는데 끝내 믿음과 추리는 배신 당한다. 너무 지적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단순하지가 않다. 신화와 가십이 섞여있고 꿈과 현실이 혼재한다. .첨단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의 두뇌는 우주시대의 두뇌이지만 동시에 태곳적 공포를 간직하는 원초적 두뇌이기도 하다. 잠은 AI로도 대체할 수 없고 꿈은 원형의 공포가 그대로 남아있는 장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