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 할머니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손녀와 할머니가 번갈아 화자가 되어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 ”집“은 단순한 거주지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역동적이고 대대로 이 집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감정에 동기화되어 있다. 읽는 내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연상되었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세대를 이어오며 고독과 고립이 지속되지만 <나무좀>에서는 세대를 이어오며 여성들의 원한과 분노와 증오가 대물림된다. 백년의 고독이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세계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즉 독재, 식민주의,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나무좀>에서는 스페인 내전으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독재와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그려낸다. 할머니와 손녀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원한과 증오와 분노가 서려 있는데 그것은 가난과 고용주들에 대한 분노, 남성들의 폭력과 학대에 따른 원한, 대물림되는 운명에 대한 증오이다. 이 집안 여자들이 4대에 걸쳐 당한 수모와 학대와 폭력으로 인해 내면화된 한과 증오는 나무좀처럼 그녀들의 영혼을 좀 먹고 그 집을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귀신이 되게 한다. 그야말로 집사람… 🫥만약 이대로 원한과 증오가 맺힌 채로 소설이 결말이 났다면 굉장히 허탈했을테지만 할머니와 손녀는 자신들의 해로운 운명의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결행한다.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그녀들의 대물림되었던 원한의 역사를 그녀들의 손으로 단절시키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가능성을 암시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