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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산이 젖고 있다
이성선 지음 / 미래사 / 1991년 11월
평점 :
절판


'시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시? 문학소녀인가 보구나?' 혹은 '나는 시는 가끔 읽긴 해.. 그렇지만 소설을 더 좋아해^^' '음..윤동주나 김소월 시 좋아해..' 등등의 얘기들을 한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시'를 안다고 할 수 없고, '시'를 많이 읽는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많은 시를, 그리고 더 좋은 시를 읽고자 하고, 또한 좋은 시를 적어보고 싶어한다. 여기서의 '시'는 단순한 감흥이나 느낌에 비롯한 것이라기보다, '시'를 쓰는 이의 삶 자체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나의 주목을 끈다. 그런 점에서 이성선 시인의 '빈 산이 젖고 있다'는 내게 '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성선 시인은 정말 소박한 사람이다. 나는 그를 알지 못하나, 그의 시를 통하여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깨끗하고 맑았다. 이성선의 시들은 시 본래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의 시 속에 주로 등장하는 사물들- 나무와 하늘과 별과 악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선 나무 이상이 없다는 시인의 말. 그런 나무보다 아름답지 못한 시인 자신이 '내가 하늘을 너무 많이 쳐다보아 하늘이 혹시 더러워지지는 않았을까'하는 순수의 본심...

현대에는 많은 시들이 쏟아지듯 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들 좋아하는 연애 시집류-류시화나 원태연 류의 시들-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 또한 시의 본류를 깨뜨리고 새로운 형식을 주창하는 시들도 새롭고 신선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더욱 더 깨끗한 마음을 노래하는 본래적 시형의 시는 오히려 우리 시대, 산문보다 짧은 '시'의 순수로, 넘쳐나는 형식 파괴와 내용 변혁의 시 속에서 '시' 본래의 모습으로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시를 읽지 않고, 시를 알지 못하는 현세대에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이 아닌, 단순한 베스트셀러를 내는 시인이 아닌, 소박한 순수를 담은 시인의 이름 하나를 기억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시를 좋아하는 것이 단순히 감상에 젖어들어 눈물 촉촉한 여고생적 감수성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질 수 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시 한 편은 마음을 씻는 순수의 약이다. 마음이 병들어가는 슬픈 어둠 속, 시 하나가 빛이 된다. 나와 너가 웃음으로 이어지는 세상, 우리 하나하나가 하늘의 연주를 잇는 나무가 되어, 하나의 산을 이룰 수 있는 세상..

빈 산이 젖고 있다..
나무도 함께 젖고 있다...
나무가 된 우리 모두가 하나씩, 하나씩, 젖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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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세계사 시인선 104
이성선 지음 / 세계사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이성선은 詩人이다>

그의 시들은 고등학교 시절, 나로 하여금 더욱 더 책에 빠지고 시를 가슴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빈 산이 젖고 있다'라는 1991년판 시집을 아주 오래도록 즐겨 읽곤 하면서.. 그렇게 나는 성장했고,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진해 김달진 문학제에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문학제에 참가했다가 내가 앉은 곳에서 좀 떨어진 앞 자리에 이성선 시인이 와서 앉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시집 속 사진에서 사람 편안히 만들어주는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웃고 있지 않아도 웃고 있는 눈. 그는 내가 읽은 시의 느낌 그대로를 지니고 있는 시인이었다.

지난 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새 시집이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라니! 그는 이제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에서 우주의 세계로까지 손을 뻗친 것이었다. 나는 기뻤다. 그리고 흔히 사람들이 내 안에 우주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우주 안에 내가 있다라는 표현이 좀 색다르게 여겨져 그 내심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서 나는 시인의 겸손함까지 읽을 수 있었다. 우주 속으로 발을 담근, 시인의 시세계..그리고 생각의 깊이. 그의 새 시집도 반가웠고,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시세계가 보다 더 본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뻗어있음도 반가웠다.

며칠 전, 나는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순수한 시를 뿜어내던, 시의 향기를 담뿍 안고 있던 그가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시를 전해줄 수 없는 곳에 가 있다는 것을.. 하늘로 떠나간 그를 생각하며 나도 하늘을 본다. 맑은 하늘.. 여름의 따뜻한 공기로 휘감아진 하늘의 빛깔은 곧, 우주 속으로 한 발자욱 더 옮겨선 시인의 눈웃음. 그것이었다...

시인은 가고, 그의 유작시집같은 시집 한 권만이 내 손에 들려있다. 광활한 우주의 한 끝 속에 발붙이고 숨을 쉬면서도 나는 아직 우주를 알지 못한다. 넓고 넓은 우주는 아직까지 온전히 다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없는 그의 시와도 같을지도......

나는 진정 우주 속에서 참'자아'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는 나만의 아름다운 시세계를 꾸려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또 다시 내게 남겨진 과제가 될 것이다.

故 이성선 시인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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