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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의 계획 VS 안중근의 반격 - 교과서가 다 담지 못한 안중근 의거
류은 지음, 이강훈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1년 10월
평점 :
✅ 대장부는 비록 죽더라도 마음은 쇠와 같으며 의사는 위태로움에 닥치더라도 기운은 구름과 같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자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모아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사 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유학자인 조부에게 일찍이 한학과 역사를 배웠으며, 자라면서 말타기와 활쏘기, 특히 사격술에 소질을 보이며 장부로서 큰 뜻을 품었다.
1894년(16세) 동학혁명을 빙자한 소요들이 일어나자 부친을 따라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1895년(17세) 프랑스 선교사 빌헬름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 선교 활동을 하고 프랑스어를 배우며 서구의 신식 학문에 눈떴다.
1905년(27세)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산동을 거쳐 상해로 건너갔다. 이듬해 가산을 기울여 돈의(敦義)학교와 삼흥(三興)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07년(29세) 북간도를 거쳐 러시아 연해주로 가서 의병대열에 참가,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참모중장직을 맡아 무장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9년(31세)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자르는 맹세(斷指同盟)로써 독립을 결의했다.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만주 시찰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같이 저격을 계획, 그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사살했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고,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일본과 그 중심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의 계획은 얼마나 치밀했으며 안중근은 왜 그를 쏘아야만 했을까?
그들이 하얼빈에서 마주하기까지,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 책은 그의 생애와 동아시아 근대사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냄으로써, ‘안중근 의거’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그 의미를 제대로 짚어 냈다.
나에게 안중근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 마디를 잘라 태극기에 붉은 피로 새긴 것 말고는 많이 아는 것이 없다. 부끄러우면서도 왜 나는 저 사실 말고는 모를까라고 의문해보았다.
이토 히로부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안중근 의사가 죽였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알고 싶었고, 이 땅에서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서 알아야 했다.
이 책으로 우리가 잊고 있던 그의 삶과 그가 꿈꾼 나라를 읽을 수 있으며, 삶의 자세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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