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 - 병법의 구도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우오즈미 다카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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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의 구도자 #미야모토무사시 를 아는가?

우리는 중국의 손자병법은 익히 잘 알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병법은 대부분은 아는 바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손자병법에 나온 ‘지피지기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도 ‘지피지기백전백승 (知彼知己百戰百勝)’ 이라고 아는 척 하면서 오용해서 쓰는 지식인들도 있다.

일부 여성들은 잘 모르겠지만 잠시 설명하면 미야모토 무사시는 아즈치 · 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의 검객이다.

검객의 아들로 태어나 일찌감치 검을 잡은 그는 두 개의 칼을 사용하는 니텐이치류 검법을 창시하였다. 젊은 시절 60여 차례의 검술 시합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무사시의 저서인 『오륜서』에는 ‘나는 어려서부터 병법에 심취하여 13세 때 처음으로 승부를 겨루었다. 21세 때 교토에 와서 천하의 병법자를 만나 몇 번 승부를 겨루었지만 승리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 후 각국 곳곳에서 각류의 병법자와 만나 60여 차례 겨루었지만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것이 13세부터 28~29세 때의 일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후세에 알려진 요시오카 기요쥬로, 사사키 고지로와의 대결 등이 모두 이 기간 중의 이야기이다.

간류지마의 결투(巖流島の決闘)로 알려진 고지로와의 결투는 후나지마(후에 간류지마로 불림)에서 벌어진 것으로, 이 결투에서 고지로는 무사시의 죽검에 의해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30세를 넘어서는 자신의 검법에 대한 반성을 시작하였고, 50세경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검법의 도를 체득한다.

1634년에는 규슈의 고쿠라에 가서 번주인 오가사와라 다다자네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시마바라의 난 진압 시 양자인 미야모토 이오리와 함께 참가하였다.

1640년에는 구마모토 번주 호소카와 다다토시의 초대로 구마모토로 옮겨 번사들을 지도하였고, 『병법35개조』를 저술하여 번주에게 올리기도 하였다. 검술뿐 아니라 번사들과 함께 연가(連歌), 그림, 다도 등을 즐겼다고도 전해진다.

구마모토 번에서는 영지 3백 석과 17인 후치(扶持, 1인을 고용할 수 있는 양의 쌀)를 받고 중견 가신에 해당하는 오구미가시라(大組頭)로 대접받았다.

1643년 자신의 병법을 종합한 『오륜서』를 저술하였고, 1645년경부터 급속도로 체력이 떨어지면서는 말년에 자신을 돌아보고 느낀 점에 대한 훈계서인 『독행도(獨行道)』를 저술하였다.

이 책을 저술하고 며칠 후 62세로 무사시는 사망한다. 생전에 태승사(泰勝寺)의 하루야마 화상에게 니텐이라는 법호를 받았으며, 구마모토 시 다키다쵸에 있는 무사시즈카(武蔵塚)가 무사시의 묘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무사시는 스스로 통달한 도가 다른 분야의 원리와도 통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리를 터득해도 그 도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 도의 원리에 따라 무사시가 남긴 그림들도 살펴볼 수 있으며 그의 사상이 어떻게 예술로 발휘되었는지도 같이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생의 마지막까지 추구했던 ‘병법의 도’는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며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당신이 인간이라면 살면서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무사시는 지천명에 진정한 ‘검법의 도’를 터득 했는데 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병법의구도자 #우오즈미다카시 #책 #글 #강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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