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도 가족 있지 않나, 꼭 풀어 달라" 피랍자 가족들 호소
▣ 피랍 가족 인터뷰
▲ 이주연(27.여) 오빠 이상민씨
> 현재 심경은?
= 처음 인터넷 통해 소식 접했을때 한국인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동생이 포함됐다는걸 알고 숨이 멎는것 같았다. 하지만 저나 부모님이나 많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는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것으로 믿고 있다.
> 대통령 담화를 들은 심경은?
= (대통령 담화를)믿고요, 다만 가족으로서 염려되는부분은 아직까지 확실한 신분 확인이 안되고 있는 것하고 AP통신 보도의 진싱여부를 알고 싶다.
> 동생 개인 신상에 대해 말해달라
= 간호학과를 졸업했고 간호원으로 일해왔다. 봉사활동도 그냥 간게 아니고 몇달간 준비기간을 거쳐서 갔다.
> 동생이 떠났을때 심경은 어땠나?
= 잘 갔다 오라고 격려해 줬다. 도착 후 어머니께 전화연락 한 걸로 알고 있다.
> 떠날때 본인각오는 어땠나?
= 많이 보고 배우고... 섬기는 자세를 배우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 오후에 대책반을 현지에 파견한다고 하니까 조속히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가족들의 마음 생각해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 서명화(29.여,간호사) 서경석(27.남.미용업) 자매 아버지 서정배(56)씨
> 현재 심경은?
= 언론보도 보고 참담했다. 하나도 아니고 아이들이 둘씩이나 이런 일을 당했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 같다. 둘 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님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니까 기대를 갖게 되는데, 다만 그 사람들(탈레반)이 얘기한 시간이 다가오면서 진실인가 거짓인가 걱정이 많이 앞선다. 맘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 자녀들의 봉사활동에 대해 말하 달라?
= 명화(딸)는 지난해 아프리카 우간다 갔다와서 너무 비참하고 사람들이 가엾다고 했다. 그때도 잘하고 오라고 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참담하다.
> 딸이 돌아온 뒤 계획에 대해 얘기했나?
= 직업이 간호사니까 돌아온 뒤 공부해서 일본으로 유학간다고 했다. 돌아와서 시험공부도 해야되는데...
> 아드님(경석)에 대해서도 얘기해달라?
= 아들이 미용일을 했다. 동생이 미용일을 하니까 같이가서 봉사활동을 하자고 했다.
> 자녀들이 떠날때 심경은?
= 공부한게 있고 시험계획도 있고 하니까 의료봉사활동 하러간 것이다. 봉사활동하는데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으니까...지난해, 지지난해도 (봉사활동) 갔다왔으니까 이해하고 말리지 않았다.
> 정부에 부탁할말은?
= 정부도 확실한 상황을 파악중인 것 같다. 답답한데 대통령님이 담화를 해주시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4시30분(요구사항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처형위협시간)이라는게 오보였으면 좋겠다.
> 피랍소식듣고 가족들 어떻게 지냈나?
= 집사람하고 조용히 집에서 보냈다. 집사람은 지금까지 밥을 못먹는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무슨일 생기면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납치한 사람도 가족이 있지 않나? 하물며 동물도 가족이 있고 가족은 누구에게나 다 소중한데, 같은 가족 입장에서 꼭 좀 석방해주길 바란다.
그 외의 것,,,,
> 현재 심경은?
= 처음 인터넷 통해 소식 접했을때 한국인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동생이 포함됐다는걸 알고 숨이 멎는것 같았다. 하지만 저나 부모님이나 많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는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것으로 믿고 있다.
처음 인터넷 통해 소식 접했을때 한국인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처음 인터넷 통해 소식 접했을때 한국인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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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걱정안해요ㅋ 우리가 철군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겠죠^^ㅋㅋ
이건 아닌것 같다. 내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단순히 나와 관련된 이익(내가 낸 국가 세금이 인질 구출에 사용되는 것 등...)떄문에
그들을 비난하는 건 아닐까? 겉으로는 이것 저것 많은 이유를 말한다고 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그러면서도 가장 크게 작용했던 건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니꼬운 시선을 던졌던 건 아닐까?
그들은 목숨을 걸고 아프간의 시민들을 위해 봉사를 했다.
그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프간시민들이 그들의 석방을 위해 시위를 한 것만 보더라도
어쩌면 그들은 20여명의 적은 숫자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어느정도의 시일이 지난 지금 차분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모두 무사히 돌아 왔으면 한다.
서로의 다름을 내가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했던 내가 부끄럽다.
기독교인으로 십수년을 살았던 그들의 생각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건
무교인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몇몇 기독교인들의 여러가지 비리를 이 사건을 통해 인질들과 억지로 연관시켜
인질들을 까대지 못해 안달했던 건 정말 자제 했어야 했던것 같다.
내가 덧붙인 글은 언제 덧붙였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일주일 쯤 뒤일까...
한달쯤 뒤일까...
지금은 2011년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