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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사진에 박히다 -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이경민 지음 / 산책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하나. 짧막한 느낌.

역사 공부라면 떠올리기 쉬운 것이 정치, 경제 등 뭐랄까 거대담론 중심이라고나 할까. 이런 등등의 느낌과 함께 연대 외우기의 딱딱하고 지루한 작업이라는 인상이다. 하지만 역사공부의 최근의 추세는 보다 세분화되고 일상사 중심, 그러니까 피부에 와 닿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재현해 보고 그 이면을 생각해 보는 것인 듯하다. 물론 여기에는 실증이라는 단서가 붙겠다. 정확한 사료를 찾아 최대한 당시의 정황을 재구성 및 재현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사진에 대해 일제의 식민지 아래에서 형성된 근대적 표상으로서 접근하고 있다. 

심심하지 않게 해 주는 사진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은 읽는 재미를 안겨다 준다. 동시에 이러한 재미는 사진이 발달하고 대중화되어가는 시간적 과정과 얽혀 간략하나마 역사적 흐름을 읽게 해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한 물음도 던져준다. 사진을 통해 삶을 억압하고 통제하면서 동시에 사진이라는 표상을 최대한 활용했던 그 이면의 숨어있는 일제의 의도도 함께 읽어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의 풍광을 통해 미지의 땅, 개척의 땅으로서의 조선 이미지와 기생의 사진을 통해 남성으로서의 표상인 일제에 조선은 기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이미지를 은연 중에 고착화 시켰다는 저자의 해석은 한 번 쯤은 이 시기의 사진에 대해서 재고해 보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기생의 사진을 조선의 이미지로 심어 놓았다는 것은 여성의 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언제든 사고 팔 수 있다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비인간적인 시각, 남성의 폭력성이 그 이면에 한 층 더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사진에 대한 식민지 조선인들의 반응, 특히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성적 욕망의 표출 도구로서 관심을 모았던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하게 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마치 강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재해가 일어나도 흘러가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어떤 모진 굴곡과 절망, 아픔 속에서도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식민지 시대, 감히 말로 다하기 어려운 고난으로 점철된 시기였겠으나, 먹고 보고 듣고 느끼는 인간의 기본적 삶의 요소들 마저 완전히 무시되었던 암흑의 시기는 아니었다는 이야기겠다.
 
오해는 없어야 겠다. 이것은 일제가 근대적 발전을 일으켰기 때문에 가져왔던 어느 한 부분에 대한 - 그것이 경제 사회 구조적 측면이 되었든지간에 - 긍정적인 평가는 아니다. 다만 인간 개개인의 삶의 의지, 그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긍정이다. 그 순간에도 웃을 날은 있었을 것이며, 그 순간에도 작은 행복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지 않았겠나. 그래서 삶은 오래살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뒤를 살펴볼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 이에 덧붙여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성에의 긍정을 한 번 떠올려 보았던 시간이었다.


두울. 심심한 인용.

1부. 권력, 사진에 눈뜨다

일반적으로 근대적 공간은 표상들로 가득 차 있고 표상의 확실성으로 진리와 가치를 이야기했다. 근대인들은 그림이나 글보다도 더욱 확실한 표상 매체를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사진은 그러한 요청에 의해 탄생되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믿는 근대의 모습이란 '사진으로 표상된' 이미지를 통해서 출현하며, 그 이미지로 근대를 이해하고 설명한다. ... 하지만 누가 재현했느냐에 따라 사진의 사태는 다르게 나타난다. ... 따라서 사진으로 재현된 이미지 이면에 작동하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주목하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p. 10)  소비 당사자인 식민지 조선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은 기존의 생산자 중심의 사진 인식을 보완활 수 있는 균형잡은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p. 11)

사진 통제는 군사상 기밀을 요하는 경우에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통제와 관리가 필요할 때마다 사진 촬영에 제한을 두었다. ... 일제는 인물사진이 갖는 상징 숭배의 효과와 기념사진이 갖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구속력 강화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사진 통제의 범위를 확대했다. (p. 49)

2부. 경성 사진관에서 생긴일

결과적으로만 보면 1893년 2명에 지나지 않았던 경성 지역의 사진사가 1930년에 344명으로 늘어난 것은 놀라울 정도의 급성장이다. 사진사의 폭발적인 증가는 당시 조선 사회에서 사진업이 고부가 가치 사업으로서 인기를 누렸던 결과이며, 사진이 대중화되면서 고객이 끊이지 않는 전망 좋은 사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p. 101)

사진의 쓰임이 인물 분야 뿐만 아니라 학술, 과학, 산업, 군사, 문화 등 인간의 활동 영역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사진관의 역할은 커져갔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선의 이미지가 생산, 유통되는 사진 문화의 장이 형성되었다. (p. 105) ... 사진의 정보적 기능 때문에 항시 감시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일제의 강점에 의한 식민지 상황 속에서 조선인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사진관이라고 해서 피할 수는 없었다. (p. 110)

이홍경은 신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분화된 직업여성들이 출현하는 1920년대의 서막을 누구보다도 앞서 열었다. 1921년 조선 최초의 부인사진관을 열었으며, 조선에서 처음 설치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된 이홍경은 한국 여성 사진 교육사의 선구가 되었다. 그녀는 재현의 대상에서 재현의 주체로 등장한 신여성의 한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가장 근대적인 매체인 사진을 다룬 직업 사진사이자 사진 교육자였다는 점은 그녀 자신을 근대적 메타포로 상정하게 한다. (pp. 135-136)

3부. 사진, 사건 사고의 중심에 서다

사진은 다양한 정치적 수사로 활용되기에 알맞은 것이었다... 자살 전후에 남긴 사진은 결국 모두 남겨진 자들을 위한 것이다. 남겨진 자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나의 죽음을 알리고, 나를 기억해 줄 것을 요구하는 죽은 자들의 마지막 기원이 사진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다시 태어나는 역설, 삶과 죽음의 인덱스인 것이다. (p. 194)

4부. 사진을 둘러싼 신문화의 풍경들

사진 결혼이 성행하게 된 것은 하와이 독신 이민자들의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가 직접적인 이유였지만, 그것은 결국 일제의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p. 219) ... 사진 결혼은 인생을 담보로 올인하는 도박과도 같았다. (p. 222) 극화된 사진 신부는 사회적 약자, 정치적 약자, 경제적 약자로서 운명적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선의 슬픈 자화상과 만난다. (p. 228)

 식민지 조선의 관광 사업을 이끌었던 쌍두마차인 철도국과 관광협회는 교통과 숙박, 통신 등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시에 관광지 개발을 통해 근대적 투어리즘을 이 땅에 이식시키고 관광의 대중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대개의 관광 사업이 산업이나 문화 방면이 아니라 주로 명승고적과 같은 풍경을 중심으로 조선을 선전하여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힘써왔다. 이는 식민지 조선을 원시적 상태에 놓인 미지의 땅, 미개의 땅으로 표상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렇게 표상된 조선의 땅은 개척지로서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식민지 개척에 나선 일제가 개발을 통한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조선을 지배한다는 식민 담론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pp. 242-243)

철도국에서는 일본인과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데 자연 풍광 못지않게 기생 이미지를 많이 활용했다. 이는 전근대적인 조선의 여성 이미지를 통해 식민지 조선이 남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라는 것을 표상한 것이다. (p. 247)

포르노그래피를 욕망과 금기의 경계선에서 탈선한 것으로 정의한다면, 사진 또한 실재와 재현의 경계선에서 탈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재와 재현의 위계적 관계를 전복하고 금기를 위반했다는 점에서 사진은 포르노적이다. 따라서 포르노그래피와 사진의 만남은 필수적이다. (pp. 257-260)

일반적으로 '에로'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의 표현으로 사용되었는데, 에로 사진은 그러한 욕망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근대의 시각성이 가장 잘 표출되는 장소가 에로 사진이다. 또한 어두운 방에서 작은 바늘구멍을 통해 외계의 대상을 바라보는 사진의 시각 체계는 기본적으로 엿보기 심리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로 사진은 욕망에 대한 이중투사이다. ... 엿보는 행위는 시각성의 과대와 과장을 초래해 대상에 대한 소유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 그것은 분명 식민지 조선을 그려내는데 있어 중요한 근대적 취미와 감각의 재료로 존재했었다. 따라서 에로사진은 근대적 욕망이 투사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조선인들의 좌절된 욕망을 보여주는 근대적 메타포였다. (pp. 264-266)

일제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선의 표상을 만들어냈고, 선택적으로 찾아낸 이미지를 조선 전체의 것인 양 일반화 시키는 표상전략을 구사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진에 대한 엄밀한 고증과 메타 비평이 필요하며, 근대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할 때 이 점이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pp. 27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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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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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 겨울이었을까.국어 선생님이 주셨던 책이 한 권 있었다. "지와 사랑" 이 역시 헤세의 작품이었다.중 3의 시각으로 무엇이 보였을까. 다만 기억 나는 것은 주인공 골드문트 였나 나르치스였나.하여간 신학을 공부했던 주인공의 방황에 대한 내용이 어렴풋하게 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물론 그 때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큰 문제였기에 이렇게 방황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간단한 생각으로 넘어갔지만..

이 책을 집어들면서 다시금 그 시절과 함께, 나의 지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한 번 웃음을 머금어 보았다..

싱클레어가 기존의 통념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읽어보았다. 단순히 청년기의 방황을 그린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담고있는 내용이 상당히 진지하다는 무게감을 느껴본다.그 방황은 단순한 청소년기의 방황같지 않아 보인다. 싱클레어가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자아의 확립, 예를 들자면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곳에 소질이 있는지, 장래의 직업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등의 현실적인 존재로서의 자아를 발견하고자 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궁극을 향한 질문이 이어진다. 압락사스라는 이름의 신이 등장한 것이 여기에 있다. 기존의 유일신 신앙.특히나 선함만을 관장하는 신에의 맹목을 뛰어넘고자 하는 압락사스라는 또 다른 종교적 세계를 말하는 것에서 자아의 발견은 결코 이 세계와 떨어져 있지 않음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제일 첫 장의 제목과 같이 두 세계로 나누어 구분한 통속적 개념의 세계관 곧, 이분법적 세계관을 극복하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 그리하여 통념적인 세상과 신앙의 현상을 다르게 보면서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실존적 존재로서의 자각,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띄는 실존에의 긍정이 목표가 된다.

이 실존적 존재는 기존의 신앙을 깨뜨리는 듯하지만 오히려 더욱 깊이 있는 겸손한 신앙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 신앙의 세계는 또한 또렷한 실존적 인식을 준다. 비록 이 인식이 통념적 시각에서 볼 때는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때로는 불경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 특히나 기존의 신앙을 담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지만 이것은 결코 불경하거나 외람된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갑자기 예라한 불꽃같은 인식이 나를 불태웠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이 있지만 그것은 그 누구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그리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직분은 아니라는 것. 새로운 신들을 원한다는 것은 틀렸다. 세계에다 그 무엇인가를 주겠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 데미안, pp. 171-172 中 -


 
불안 속에서 발견해내는 이 과정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절정에 치닫는다. 죽음의 고비를 맞이한 그 순간 데미안과의 황홀한 만남을 경험하면서 다시 처함한 전쟁의 현실로 눈을 뜨고 끝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순간은 두 세계의 구분을 뛰어넘어 통합의 세계를 시작하는 첫 출발이다. 싱클레어가 그 자신이 고대하던 "그"와의 연합이 이루어진 경이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자각이 보다 분명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 난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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