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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 본질과 역사 ㅣ 신학텍스트 총서
한스 큉 지음, 이종한 옮김 / 분도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저자가 밝힌 목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역사의 노정 속에서 이 본질은 어떠한 외양 가운데 존재해 왔는가? 이를 위해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을 읽어내려가며 그리스도교의 패러다임을 분석해 낸다. 원그리스도교 묵시문학 패러다임, 고대교회 헬레니즘 패러다임, 중세 로마 가톨릭 패러다임, 종교개혁 패러다임, 근대 계몽주의 패러다임이 그것이다. 이 패러다임 속에서 교회가 지금껏 존재해 온 양태는 고대교회 헬레니즘 패러다임에서 정교회의 전통주의가, 중세 로마 가톨릭 패러다임에서 로마가톨릭의 권위주의, 교회주의가, 종교개혁 개신교 복음 패러다임에서 개신교 근본주의가, 근대 계몽주의 패러다임에서 자유주의의 근대주의가 있어왔음을 공들여(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제시되는 새로운 물음은 어떤 패러다임이 펼쳐질 것인지, 앞으로의 그리스도교의 모습은 어떠해야하는지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의 중심 축은 총체적 사고에 기반한 일치운동이다. 여기서 일치라는 의미는 하나의 단일 개념은 아닌 듯하다. 앞서 저자가 다룬 본질에 충실한, 그래서 오히려 '정통적', '가톨릭적', '복음적'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을 충분히 드러내는 개념이 가깝다 하겠다. 그 세세한 연결점과 이렇게 묶어내는 저자의 묵직하고 깊이 있는 통찰력은 이 책 속에서 저자와 대화할 때 더욱 맞갖고 풍성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책 속에서 저자와 대화해야만 한다. 이 짧은 글은 그 깊이를 드러내기에는 그저 얕고 얕은 겉면의 한 단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던지는 질문과,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은 주목해 볼만하다. 어쩔 수 없다. 책에 대한 나의 작은 기억들을 정리하는 끝맺음은 이 책을 위해서라도 저자가 이 책을 시작하는 목적을 통해 드러낸 큰 구상을 다시금 되짚어야 할 것 같다. 작은 끝맺음은 또 다른 시작, 더 깊은 곳을 향한 작은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내게 올해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당분간 그렇게 기억되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열어볼 것 같다. 이 내용에 대한 이렇다 저렇다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아무튼 참 좋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참 의미깊은 여행을 했다. 번역도 상당히 좋았다. 나도 이렇게 번역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대체 그리스도교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그리스도교들 -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교,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교,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교 이외에 요컨대 바로 그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제도, 정당, 운동, 교조, 법규, 의례가 "그리스도교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가! 그리고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얼마나 자주 소홀히 다루어지고 낭비되고 더 나아가 배단당했던가: 그리스도교 대신 오로지 교회주의,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정신 대신 로마식 체제, 개신교식 근본주의 혹은 정교식 전통주의. 그래도 어쨌든 그리스도교는 유다교 이상으로 모든 대륙에 현존하는 영적인 힘으로 살아남아 있다. 그리스도교는 파시즘과 나치도,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도 없애버리지 못한 명실상부 최대의 세계종교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들의 교회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교를 내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본디 무엇인지, 또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어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일에 도움을 주고자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교회 안의 개혁적 역량들을 뒷받침하고자 한다.
그리스도교는 더 그리스도교다워져야 한다. 제3천년기의 미래전망도 다름아닌 이것이다. 로마식 체제, 정교식 전통주의, 개신교식 근본주의 이것들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외양들이다. 이것들은 언제나 있던 것이 아니며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어째서? 이것들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이 본질적인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를테면 그리스도교의 본질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의 방향을 지시하는 원천들에 대한 돌이켜 깨달음 없이는 답을 얻지 못한다. 그 원천은 물론 그리스도교의 바탕문서인 성서와 전범적 인물 예수 그리스도다. 또한 각양각색의 종파적 특징들을 보여주는 교회 전통들에 대한 비판적 조망 없이는, 그리스도교계의 분열로 점철된 2천년 역사에서 참으로 그리스도교다운 것을 묻는 물음에 답을 얻을 수 없다.
지금까지 말한 바에 따라 이 책은 2천 년 그리스도교에 대한 일종의 비평사적 정산을 시도할 것이다. 이 책은 역사와 조직신학 두 차원의 종합을 감행하고자 한다. 역사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해 나가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한 분석적 논증을 제시할 것이다. 이 책은 매우 극적이고 복합적인 역사를 서술할 터이지만, 동시에 그 역사를 거듭 새삼 그리스도교의 원천에 비판적으로 비추어보고, 그리스도교가 그때그때의 특정 패러다임 아래에서 치러야 했던 희생에 관해 캐물을 것이다. 또한 "미래를 위한 물음들"도 제기될 것인바, 사실 어떤 교회 전통이 경직되어 참된 "보편성"을 저버릴 경우에는 언제나 그러한 물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 책은 단어의 가장 참된 의미에서 보편적(일치운동적)인 저작이 되고자 한다. 이 모든 작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과거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또 왜 오늘날의 모습으로 되었는가라는 문제다 - 그리스도교의 바람직한 가능태를 염두에 두면서. 이러한 유형의 역사서술의 특징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시대들과 문제들을 교차시킴에 있다.
- 한스 큉, 그리스도교, 분도출판사, 2002, 이 책의 목적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