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로 말하라 (양장) - 언어 유진 피터슨의 영성 4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주변의 사람을 대할 때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 세워 놓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싶다. 결국 그것은 모두 같은 언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는 하나님 그리고 설교할 때 선포하는 하나님은, 지나가다 가볍게 혹은 따로 만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삶에도 깊이, 영원토록 관여하신다. ...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그리스도로 구현되고 성령이 살아 움직이는 말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거룩성을 존중하는 언어를 계발하기 위해 내가 채택한 텍스트는 예수님이다. ...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면서 저자와 독자인 우리가 함께 모든 형태의 비인격화하는 종교적 언어를 분별하고 경계할 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언제나 인격적인 언어를 좋아하고 그것을 사용할 줄 알게 되기를 바란다. (15-17쪽)

말과 행동은 일치하기 어렵다. 말은 쉽고 행동은 피곤하게 한다. 종교의 세계에서 말 만큼 쉽게 내뱉어지는 것이 없고 더불어 행동하는 것처럼 하기 힘든 것이 없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에게 있어서 존중을 받는 세상이면서도 동시에 비판의 대상이다. 그리스도교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스도교 중심에 놓여진 신앙의 체계로서 내뱉어질 수 있는 말(교리, 체계적인 신앙의 내용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행동과의 큰 불일치를 겪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말과 행동의 이원화는 성과 속을 둘로 나누었고, 두드러진 이분법적인 세계 속에서 말은 말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교리는 교리대로 삶은 삶대로, 그대로 구별시켜내고야 말았다. 거룩이라는 말로 종교는 권위를 등에 업은 채 역사, 삶의 실제, 인격적인 고백에서 발 딛지 못하고 허공에 떠 다니고 있으며, 복음의 전파라는 지상 최대의 사명을 두고 타인을 향한 정죄의 말들, 다가오지 않는 구원의 은혜로 포장된 빈껍데기 말들을 쏟아놓고 있다. 행동에서는 인격이 사라진 형식과 제도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으며 합리화되고 있는가 하면,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삶 대신 도덕에 불과한 율법이 도덕주의로 인격을 옥죄고 있다. 여기서 인격과 인격의 만남은 그 어디에서도 발 붙일 곳이 없어 보인다. 말과 행동의 철저한 분리이다.

유진 피터슨은 여기서 말과 행동을 하나로 묶어 낸다. 그가 말하는 언어의 영성이다. 언어의 영성은 비인격화하는 종교적 언어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격적인 언어로 고백해내는 삶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의 영성은 일상의 영성이 된다. 언어는 삶을 담보하고, 삶은 언어를 담보한다. 바로 예수께서 하신 이야기와 기도가 그 두 축이다. 이야기와 기도를 통해 언어는 삶으로 초대되고, 삶은 언어로 인해 풍성해 진다. 여기에는 비인격이 자리붙일 곳이 없다. 이야기가 전해지고 듣는 자리는 종교적 권위가 허상의 굴레로 자리할 수 없는 곳이다.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말하는 이에게 참여하도록 잔잔히 이끌어주고 기다려준다. 그리고 여기서 비로소 인격과 인격이 만나게 된다. 그 참여는 단순한 이성적 이해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와 같은 세계, 풍성한 상상력이 삶으로 이어지는 실제로서의 세계를 살아내도록 하는 참여로서의 삶이다. 그 삶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 또한 기도이다. 기도는 이야기를 온 몸으로 드러내는 몸짓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 몸짓 한 가운데 인격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역시 하나님께서 인격으로 마주하시는 세상과의 만남이 있다. 언어의 영성이 일상의 영성으로 풍성해 지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미 창조와 언약의 거대한 이야기,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거대한 이야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와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들 안에 잠긴 상태로 잠에서 깬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를 형성시켜 주는 이야기들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특히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식, 에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 예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방식, 즉 예수 방식(Jesus Way)을 익힌다. ...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들과 예수님이 사신 삶은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과 우리가 살아내는 이야기 안에서 계속해서 순환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이 곳에 있다.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다. (263쪽)

이야기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항상 인지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지도로 그려 그 내용을 해독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명령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는 모호함과 참여의 여지를 제공해 주는 언어다. ... 우리는 언어를 탈육화해서 사상을 표현하거나 규칙을 요약하거나 정보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67-268쪽)

기도는 하나님을 조작하는 언어(마술의 길)을 거절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나의 통제 대상으로 축소하는 언어(우상의 길)을 거절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상이나 세력이나 느낌으로 비인격화하는 언어(경건주의적 자기 반성의 길)를 경계한다. 기도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사용하는 일에 전문성을 가진 영적 기술자들의 영향을 경계한다. 우리의 뜻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강제하는 기술을 경계한다. 기도는 기도를 사유화하고 성도들과의 교제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는 우리 자신의 내적 성향을 경계한다. 그리고 기도는 분명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의 문제와 책임으로부터 물러나는 행위를 영적으로 은폐해 주는 핑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서 쓰는 언어이며,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 (444-445쪽)

성서의 깊이있는 세계로 들어가야하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하는 책이다. 물론 이 세계는 그만한 배움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배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한 그만한 삶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소중하다. 배우고 사랑하고 살림을 일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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