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동서고금을 통해 씌어진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기본적 주제는 '같이 놀래?'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형색색으로 다르게 생긴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자리싸움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적 보편성을 찾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뇌를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 그에게 동정을 느끼고 "같이 놀래?" 라고 말하며 손을 뻗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6-7쪽)

역사와 문학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 어찌보면 극과 극의 거리를 달리고 있는 듯하다. 인간을 다루고, 인간의 삶을 다루고, 살림살이의 이야기거리들을 남기지만 하나는 실제이며 다른 하나는 실제적인 허상과 같다. 실제를 써 내려가는 것은  때로는 차갑다. 실제여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가 과연 있느냐의 질문을 보다 깊이 생각해 봐야 함에도 어찌되었든 그 기본은 실제다. 그래서 사료가 있다. 하지만 문학은 사료가 필요없다. 실제적인 듯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얼마든지 지어내고 꾸며내고 느껴낼 수 있는 세계이다. 하지만 실제가 필요하다. 실제가 없는 허상만으로는 허황된 환상에 머물러 버리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두 장르가 공통으로 담보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성이며 삶이다. 어떤 삶을 살았는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가. 역사와 문학이 주는 즐거움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제시하는 즐거움, 문학의 과업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진정한 인간되기,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맞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 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상상력, 창의력, 논리적 분석력도 결국은 인간됨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장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는 '올바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같이 놀래?" 하며 손 내미는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10쪽)

꿈을 꾸는 것, 진정한 인간됨의 삶을 추구하는 것을 문학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정겹다. 저자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과 어울리면서 문학작품의 세계를 열어주는 듯하다. 그래서 재미있고 감정적 느낌을 풍성하게 안겨준다. 인간됨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뭔가 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저자의 불편한 몸을 생각하더라도 너무 깔끔한 듯한 느낌이었다. 인간됨의 삶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무형의 가치와 같은데, 때로는 그런 이상적인 가치가 실제적 삶에서 안겨주는 허망함 같은 느낌도 만만치 않은데, 실제는, 역사는 그렇게 깔끔하고 깨끗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삶의 의미 부여만큼 삶이 아름다울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 마음을 풀었다. 저자 역시 실제적 삶을 살고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318쪽)

인간, 인간됨, 인간적인 삶.. 이는 여전히 내게 중심된 화두이다. 인감됨의 꿈을 꾸고 현실을 직시하고 발을 내딛기 위해 문학의 이야기들을 듣고 마음에 떠올려본다. 그리고 실제의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마음가짐도 되짚어 본다. 여러 문학 고전들의 세계를 엿보게 해주고, 지금을 떠올리게 해준 참 좋은 책이고 재밌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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