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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家 이야기 - 한국과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서양인 가문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 사는 곳에서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이 흔적들을 바라본다면 소소한 모습으로서는 인생살이가 될 것이며, 조금 더 거창하게 본다면 역사가 될 것이다. 결국 역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의 흔적이다. 이 흔적은 함부로 지우거나 꾸며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잊혀지거나 묻히기도 쉬운 것이기도 하다. 누구의 인생살이가 더 크고 보람되다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사라는 것에서는 지우거나 꾸며내어서는 안되는 것들, 그리고 잊혀지거나 묻히기에는 그 흔적이 남긴 것들을 되돌아볼 의미가 상대적으로 조금은 무거운 것들이 생겨난다. 언더우드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런 측면에서는 역사에서 다루어질만하다고 볼 수 있다.
언더우드가는 4대에 걸쳐 한국에 살며 교육, 선교, 의료, 문화, 정치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관계 맺으며 한국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가문이다. 1885년 기독교 선교사의 자격으로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언더우드 1세는 교파간의 차이를 초월한 선교활동을 펼치는 한편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사학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워 본격적인 근대 고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선교사로 활동했던 언더우드 2세는 연희전문학교의 교장으로서 이상교육 실현에 이바지했으며, 식민지 시기 수원 제암리 교회와 수촌리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등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언더우드가와 한국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세인 원일한이 아버지 원한경과 더불어 한국전쟁에 자진해서 참전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UN 통역사로 활동하며 동생들과 함께 휴전회담이 성사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언더우드 가문의 이러한 절대적인 한국사랑은 4세 원한광의 형제들로까지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들이 이 땅에서 보낸 120년이라는 시간은 '한국 근현대사의 전부이자, 한국 기독교 역사의 모두'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책 뒤표지에서)
한국의 근대, 현대와 맞물려 있는 이들의 삶의 흔적들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한국의 모습이 보이고, 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여기에는 정치도, 문화도, 교육도, 종교도 있다.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삶의 모습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언더우드 1세가 설립한, 일생의 과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연세대학교에 관한 부분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서구 제국주의적 문화권을 이유로 이모양 저모양 다른 말들을 많이 할 수 있다하더라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보다 긍정적인 언급을 아끼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의 사상적인 맥락도 짚어봐야할 부분이 다분하다.
언더우드가 연희대학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가치와 진리와 정서로서 호소하고 싶었던 기독교는 그와 같은 정치적의 미의 민족 기독교만도 아니었고, 또한 문화적 이식 형태의 외래 기독교만도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그야말로 한국의 문화와 혼에 내재하는 기독교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연희대학의 또 다른 가치축인 한국학, 곧 '한국'이라는 주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 언더우드가 그의 대학에서 실현시키고자 한 가치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이었다. ... 이러한 언더우드의 꿈은 민족 수난기라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연희대학을 중심으로 꽃 피어난 국학 연구의 전통 속에 그 첫 열매를 맺게 된다. ... 많은 사람들이 연세대학에 대해 선교사 설립의 대학, 서구적 이미지의 대학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생각은 설립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안에서 가장 한국적인 학문의 명제들이 연구되고 창출된 실제를 본다면 언더우드의 이러한 구상은 적절히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150-151쪽)
또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이들의 삶이다. 이는 언더우드 1세의 아들들에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다.
한국전쟁기 언더우드 가문의 활동과 변화에 대해 기록할 사항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집약하면 언더우드 2세 원한경의 활동과 죽음, 그리고 3세 원일한 형제의 종군 활동,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에서 원일한 형제가 통역을 맡아 활동했던 일이 가장 중심에 놓일만한 사항일 것이다. 이들 언더우드 가문이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특징적인 점은 한국이 위기 상황에 놓일 때 늘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242쪽)
열세 개의 이야기거리 가운데 여덟 개가 언더우드 1세와 관련된 이야기이고, 나머지 다섯 개의 이야기가 그 아들들과 언더우드가의 여인들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외견 상으로는 언더우드 1세에 보다 무게중심이 실려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다른 말로 한다면 아직은 후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역사로 부각되지 못한 측면이 많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할 부분은 언더우드 1세가 꿈꾸고 이루어내었던 기독교와 한국이 공존하는 연세대학교에 관한 부분이다. 사실 언더우드 1세는 연희전문 설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기에, 그 이후 연희전문의 존립과 운영에 관련된 것은 언더우드 2세와 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용문에도 언급되었듯이 한국전쟁기 언더우드 가문의 활동과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의 살림살이의 흔적,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들어보는 이야기들은 한 사람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며 또한 한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가 아닐까. 언더우드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옛날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 또한 앞으로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