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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ㅣ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평점 :
우리가 창비시선 300번을 맞아 '사람'을 주제로 선택한 것은 시가 대화여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로 타인과 교류하면서 생성된 또다른 자아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주체를 만들어갑니다. "시인의 기능은 시적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속에 그것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발레리) ... 즉 하나의 개성이 아니라 다양한 개성 속에서 우리들이 만지고 보는 사물과 만나는 인간들이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느기는 것, 그렇게 생성된 리듬이 시적 대화의 출발입니다. - 엮은이의 말 (154쪽) -
어린 시절 외할머니를 통해서 듣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이야기 하나에 울고 웃고 즐거워했던, 그리고 잠을 청했던 시절... 그러나 어느 순간 삶 속에서 이야기가 사라져 버렸음을 문득 떠올린다. 마음을 달래주고, 마음을 녹여주고, 마음을 이어주는 이야기 대신에 차갑고,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이고, 위선적인 말들의 묶음이 난무하는 지금이다. 이러한 말들 가운데서 휴식처를 얻기란 그리 쉽지 않은 법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어보일 만한 공간,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할 만한 공간 더불어 타자의 존재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만한 공간이 자리하기에 턱없이 비좁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던 이유는 이러한 공간의 턱없음과 크게 대조되면서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와 외할머니가 함께 자리하는 공감의 큰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시를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시를 읽는 다는 것은 짧은 이야기들을 작은 노래처럼 들어보면서 최소한의 공간을 내어보도록 하는 작은 출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짧은 언어에 담긴 긴 여운을 듣기 위해서는 빠르게만 스쳐 지나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울고 웃으며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그 공간에로의 참여는 삶에의 대화, 결국 나를 보게 하면서 동시에 타자를 보게 하는 감정적 공감대를 이어주고, 보이지 않는 느낌, 그 말없음의 이야기를 활짝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사람'을 주제로 엮어놓은 시들을 통해 이러한 느낌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다면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또하나의 소득이 있다면 여러 시인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알지 못했던 시인들과의 만남을 열어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저 느낌 와 닿는대로 그 시인의 대화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면 또 하나의 이야기를 얻는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