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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ㅣ 정용섭의 설교비평 2
정용섭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7년 2월
평점 :
필자는 설교비평 작업을 전개하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그 문제를 지적했다.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설교자들이 성서 텍스트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성서 텍스트가 해석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서 텍스트는 실종된 채 설교자의 주관적 신앙체험이 과잉 생산되며 성서 텍스트가 다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단지 규범으로만 취급된다. 이 사실은 복음주의나 에큐메니컬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설교자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명백한 현상이다.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머리글 중)
2007년 언제였을까. 추석이었던 것 같다. 집에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아버지께서 보라고 두 손에 쥐어주신 책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녀올 때 틈틈히 읽었던 책이다.목회자별로 하나의 논문처럼 분석하고 쓴 글이라 틈틈이 읽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앞서 필자가 기준을 삼은대로 필자는 목회자가 설교 속에서 얼마나 성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는지 철저하게 분석한다. 필자가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 곧 역사, 철학, 문학, 신학을 망라하는 지적 토대의 확립, 특히 조직식학적 사유와 성서신학적 분석, 그리고 교회사의 흐름 속에 내재된 깊이 있는 신앙의 진수를 읽어내는 눈이다.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목회의 현장이 갖는 역동성과 예측 불가능성, 곧 실제로 성도들과 맞부딪히는 목회자의 그 삶의 자리를 간과 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와 한국인의 독특한 종교적 심성인 샤머니즘적 기복의식, 유교적 당파와 가족 중심주의에 기반한 이기주의적 성향 등의 한국인의 종교적 토양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 두울이 마냥 저 중심적인 논지를 쉽게 받아들이게만은 하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신학자의 신학적 관점에만 매몰된 아주 이상적 관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신학의 길과 목회의 길이 그렇게 극과 극처럼 보이기는 해도, 동전의 앞과 뒤처럼 평생 만날 수 없다해도 결국은 한 몸인 걸 생각해 본다면 쉽지 않은 길이라 할 지라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눈을 떠라. 성서로 들어가서 신앙의 깊이 있는 세계를 볼 수 있게 그 세계와 더불어 깊이 있는 영성의 소유자로 성장할 수 있게. 참 좋은 책을 읽었다.
- 2008년 1월 16일 책을 읽고 나서 -
그러고 보니 이 책을 읽은게 2008년 1월 초였던 것 같다. 이 책과의 만남은 지금도 내게 영향을 준다. 정용섭 목사님의 설교를 매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듣는다는 물리적 연관성도 있지만 이 후로 설교에 대해 보다 진지한 성찰을 스스로에게 매번 던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서 이를 쌓아가기 위한 자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하나의 큰 충격과 같이 느끼게 해 준 책이 아니었나 되돌아 본다. 기독교 신앙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어느정도의 내공이 쌓여 있는가. 종교적 언어로 본다면 영성이겠지만.. 사람을 달래고 홀리는 하나의 기술(skill)이 난무하는 듯이 보이는 교회의 현실 앞에서 과연 과는 어느정도의 깊이 있는 내공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항상 물어보고 돌아보아야 할 문제임은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