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안도현 지음 / 리즈앤북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그냥

나이가 들어 어린 아이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과 어떤 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하는지, 이미 그 시절을 지나보낸지 오래이기에 그 거리만큼이나 어린아이들을 따라가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만약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랬었지" 하며 회상해 볼 수 있다면 이는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뒤를 돌아보는 것, 잠시 멈추어 보는 것, 이 모두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하나의 중요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어른의 시각과 아이의 시각은 그 시작부터 다르다. 알리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태도와 알리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진작부터 어긋나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알리, 그러나 정작 알리는 달라서 모자라는 아이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어서 다르고, 넘쳐나는 아이처럼 그려진다. 생명을 존중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생각할 줄 알고.. 과연 우리는 무엇을 품고 있어야 할까. 

알리와 주인공이 엮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당시의 자화상은 지금에 돌이켜보면 풋풋한 추억이기도 하지만 아리고 또 아린 기억이기도 하다. 배고픔을 달랠 길이 없었던 시절, 전쟁의 아픔,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서러움(지금도 어쩌면 비슷하겠다).. 이 모든 것이 삶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함께 해왔던 것이다. 희생이라는 것이 영문도 모른채 강요되었던.. 

이렇게 본다면 알리의 마지막을 거칠게 다루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만..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나비를 쫓았던 알리의 그 풋풋하고 맑은 모습이 다소 거친 감이 없지 않은 노조위원장으로 등장하면서 결국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흐름상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싶은데.. 하긴 직면해야할 삶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투쟁이기도 하겠지만서도.. 아쉽다. 나비가 되었다라는, 새가 건드리지 못하는 힘(?)을 가진 나비가 되었다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이 되긴 하면서도 지울 수 없는 아쉬움.


구절구절 인용

그 당시에 나는 점점 어려워지는 학교공부에 지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 친구들하고 어울려 노는 시간도 줄여야 했다. 그런데 알리는 만사 태평이었다. 내가 눈을 말똥말똥 드고 긴장 속에서 보내는 수업시간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오줌을 누다가 발견한 나비를 따라 나선 아이, 수업을 빼먹고도 당당한 아이가 알리였다. 나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낌 없이 척척 해내는 알리가 좋았다. 수만 대군을 이글고 적을 물리친 장수만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을 자신있게 할 수 있다면 그는 영웅인 것이다.   (58쪽)

알리의 머리가 아니라면 이 세상 어느 부자도 이렇게 작은 텔레비전 하나로 잔치를 연출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리는 실제 생활은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부자였다고 생각한다. 이것 하나만 봐도 여러분은 내 친구 알리가 얼마나 자상하고 사려 깊은 인간이었는지 아실 것이다.    (94쪽)

알리는 성미희한테 빠져들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 정말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뚱거릴 정도의 굉장한 변화였다. 나는 사랑에 빠진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키는가를 알리를 통해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의 힘은 확실히 위대한 것이었다.  (125-126쪽)

나는 가죽잠바하고 싸우기 싫어서 학교에 간다. 가죽잠바하고 싸우면 내가 진다. 가죽잠바는 어른이고, 어른은 큰소리로 윽박지르고 아이를 겁먹게 한다. 그런데 가죽잠바는 요즘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그냥 냉랭하다. 나는 그게 더 무섭다.   (145쪽)

여러분은 새가 나비를 잡아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는지? 나비가 맛없는 곤충이라는 걸 일찍이 파악했기 대문에 새가 나비를 먹지 않는 게 아니다. 날개가 달린 나비의 몸집이 작은 부리로는 집어먹을 수 없을만큼 크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는 모르는 것이다. 나비의 날개가 자신을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말이다. ... 알리, 그 아이는 나비가 되어 날아간 것이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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