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도 같은데, 얽히고 설키고 아둥바둥하는 것을 보면 뭐랄까 그래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마노농장(Manor Farm)에서 일어나는 혁명적인 사건, 그리고 나폴레옹(Napoleon)과 스노우볼(Snowball)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동물농장(Animal Farm)의 성립. 나폴레옹의 스노우볼 축출. 나폴레옹만의 독재체제 구축. 일련의 이야기들이 단지 동물들이 그려내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 땅에서 일어났고, 어쩌면 지금도 일어나는 일만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권력에 대한 욕구는 끊을 수가 없는 것일까. 부와 명예 그리고 강력한 힘에의 동경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 소유한 본성적 본능인가. 강력한 자아에 대한 매혹은 인간이 누를 수 없는 죄의 유혹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하나님의 상을 만들지 말라는 우상화의 금지계명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역시 인간인지라 자아의 욕망은 신마저도 만지고 볼 수 있는 그런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사실. 그래서 얽히고 설키고 온갖 추잡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겠지. 자아.. 곧 나라는 존재의 당위성 때문에 말이지.
그래서 함께 살기. 이상적 삶의 모습이었던, 이 동물들이 처음에 내 걸었던 유토피아적 삶은 아마도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인간에 대한 좌절과 절망은 이런 강력한 자아에 대한 욕망, 그 욕망에의 집착 뿐 아니라 반대로 자아를 확립하지 못하는 무지한 동물들의 모습 속에서도 그려지고 있다. 나폴레옹과 그 작당들의 끊임없는 세뇌작업과 현란한 말에 놀아나는 많은 다른 동물들. 특히나 일만 할 줄 아는 우직한 말, 박서(Boxer)의 우매함은 더욱 그 좌절과 절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쪽의 끊임없는 욕망, 강력한 자아를 향한 욕망과 너무나 대조되는 무지하고 깨닫지 못하는 맹목적인 불완전한 자아의 모습. 그러나 어떻게 하나. 그 둘의 모습 모두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2009년을 살고 있는 지금. 나라 안 팎이 시끄럽다. 불도저 MB정권의 시각과 하는 작태가 시대를 거스르는 것만 같은 모습에 허허실실. 자포자기의 관조로 만들어버리는 모습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먹고살기 바쁜 현실에서 아둥바둥 거리는 나의 삶의 모습에서.
거기나 여기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참 재밌는 모습 아닐까. 그래서 끊임없이 읽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이 소설의 마지막 결론과는 다른 모습에 대한 기대라고 하겠다. 돼지와 인간의 구분이 거기에서 거기였던 욕망의 현장. 마지막 장의 현란한 파티. 이 현란한 파티를 목도하면서도 그 어느 자극조차도 받지 못하는 다른 동물들의 무력함.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미 거기에서 뛰어나온 경험이 있다는 것. 서슬퍼런 무력의 쇠사슬 앞에서도 사람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경험을 통해 지금을 만들었다는 경험. 촛불을 들고 축제를 만들며 평화시위에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많은 이들의 몸짓이 언젠가는, 언젠가는, 또 한 번의 강력한 물결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마지막 결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