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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 ㅣ 구텐베르크 클래식 시리즈
아나톨 프랑스 지음, 김태환 옮김 / 구텐베르크 / 2026년 3월
평점 :

아나톨 프랑스의 《펭귄의 섬》은 겉보기에 유쾌한 우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류 역사 전체를 난도질하는 날카로운 메스가 숨겨져 있습니다. 성자 마엘이 실수로 펭귄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시작되는 이 연대기는, 인간이 쌓아 올린 종교, 정치, 법, 도덕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에피소드들은 2026년 오늘의 뉴스 데스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특히 제6,7,8권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다르지 않아 섬뜩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6권 '피로 사건'에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유죄의 증거"라고 외치는 군부의 논리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사실(Fact)을 외면하는 현대 정치의 '사법 리스크' 논쟁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습니다.
제7권 '세레스 부인' 편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국가의 공적 시스템이 한 개인의 사적 탐욕과 비선 실세의 욕망에 의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부패의 메커니즘을 냉소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묘사합니다. 특정 인물의 행보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탐욕은 문명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치명적인 독소임을 작가는 경고합니다.
작가는 문명이 정점에 도달한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고 다시 원시 상태로 돌아가는 결말을 통해, '인류는 진보한다'는 낙관론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펭귄들은 다시 옷을 입고, 다시 땅에 말뚝을 박으며 똑같은 비극을 반복합니다. 이는 탐욕이라는 본성을 극복하지 못한 인류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무한 루프'의 굴레와 같습니다.
《펭귄의 섬》은 단순히 과거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는 책이 아닙니다.
권력의 속성, 군중의 광기,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자라나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탐구하는 인류학적 보고서입니다.
정치적 혼란과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정장을 입은 펭귄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서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