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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고령화가족의 숨겨진 막내딸 ‘나’
-천명관의 ‘고령화가족’을 읽고-
나, 고령화가족을 읽어내려간 ‘독자’는 삼남매 중 큰딸로 태어났다. 오로지 안정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 흔히 나랏돈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공무원을 내 의지가 아닌 부모님 의지로 인해 준비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고졸’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기 직전, 문득 2개월간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떠난 일본 여행길에서 왜 내가 이런 식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 어째서 젊은 청춘이 나를 위해 소비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개탄한 후 나는 공무원 준비를 때려치우고 어렸을 적부터 원하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내 몸 하나 잡아먹혀도 좋다는 식의 열정으로 하고자 했던 일에 뛰어들었던 나였건만 결국 실패의 쓴맛을 맛보게 되었다. 쥐꼬리만한 월급과 열여섯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 신종플루 바이러스에도 맞서 싸우지 못하는 저질 같은 체력. 결국 남들은 부모님한테 월급 10퍼센트만큼의 용돈을 손에 쥐어드릴 때 나는 허리 꺾일 정도로 일하시는 부모님으로부터 곰팡이 피어대는 반지하방 월세를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천명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모님 옆에 빌붙는 빈대’라고 얼굴에 쓰인 사람이 됐다고나 할까.
이런 인생의 통로를 걸어가고 있을 때 내 손에 ‘고령화가족’이 쥐어졌다.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밀려있는 세금과 핸드폰 비용은 어떻게 내야 하나와 같은 무수한 고민으로 인해 머리가 터져버릴 즈음, 그저 우스꽝스러운 표지 하나 믿고 가벼운 소설책으로 머리나 식혀보자 해서 없는 돈 털어가며 택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읽으면 읽을수록 내 이야기가, 그것도 한 10년 후까지 내 모습은 이럴 거야라고 상상했던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오함마와 오인모 그리고 미연의 인생까지. 이 책은 그저 나에게 단순히 재미로 여겨질 책이 될 수는 없었다.
나이 먹도록 노모의 옆에 딱 붙어살며 부엌에 있는 먹거리들은 있는대로 흡입하는 오함마와 스태프들을 진두지휘하며 폼나는 영화 하나 만들어보려 했으나 모조리 흥행에 실패하고 낙오자 및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린 오인모, 술집을 운영하며 이혼이라는 도장을 찍고 사춘기를 훌쩍 지나친 듯한 딸을 데리고 노모의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온 미연까지. 겉으로 보았을 때 분명 이들은 내 인생과 똑같은 퍼즐 조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째서 부모님 앞에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서고 싶지 않겠는가. 손에 쥐고 있는 물질과 권력, 하다못해 집안 배경이라도 있지 않고서는 이 나라 안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된 모습으로 서기엔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다. 오함마, 오인모, 미연도 분명 그네들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겠지. (서로의 미래가 이리 될 줄 생각을 했으려나?)
노모의 좁은 집이 꽉 차 보이게끔 서로 각자의 평수를 챙긴 세 남매는 그 속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던 옛 가족의 모습을 다시 그려냈다. 티격태격, 하루가 멀다 하고 가벼운(?) 욕설이 난무하고 밴댕이처럼 조카의 피자를 탐내고 용돈을 합리적인(?) 이유로 약탈하고 조카의 속옷으로 못된 행각을 일삼기까지 하는 가족이지만-그리 평범한 가족의 모습은 아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타의로 엮인 공동체의 힘이 어쩔 수 없이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크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형제의 자랑거리를 내뱉고 대신 교도소 징역을 복역하고 뼈가 으스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을 수 있는 어떤 계기. 그건 ‘가족’의 힘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삼남매가 각기 다른 핏줄에서 태어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 경악케 했다. 화장품 가방을 들고 동네를 사방팔방 다니는 노모가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다 만들어 낸 결과물인 것이다. 오함마도 아이에 대한 노모의 진실된 사랑으로 품에 안은 아이 아닌가. 정말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는 요즘의 세대가 아닌 이상 옛날옛적 혼례를 치렀던 부모님들 중 사랑의 양과 질을 고려해서 혼인신고에 도장을 찍는 분들이 얼마나 계셨을까.
고령화가족의 최고령, 삼남매의 노모도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다가 내면의 진실된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세월,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해야겠다는 그 마음을 어느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각자의 ‘진실’이 모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고령화가족은 읽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과거의 ‘진실’들이 허물을 벗고 삼남매에게 드러났을 때 느꼈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결국 ‘진실’로 인해 정말 ‘진실된’가족으로 거듭나지 않았던가.
현재 세상은, 그 속에 속해있는 대한민국은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서로 생각을 나누고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기회들이 줄어들면서 가족은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가족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변모하고 있다. 대화는 침묵으로 변하고 관심은 무관심으로 변하면서 ‘가족’은 그야말로 힘없이 늙어만 가는 고령화의 모습을 띠고 있다. 스스로가 나약해지고 혼자 서기 어려워지면 결국 기댈 곳은 ‘가족’뿐인 것을 사람들은, 나조차도 닥쳐서야 깨닫는 미련한 시간들을 흘러 보낸다.
그래도 돈이라는 것을 벌 수 있고 ‘가족’의 구성원들이 세상에 남아있을 때가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루빨리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자. 그게 우리가 무미건조해져만 가는 세상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