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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 정의가 법이라는 그럴 듯한 착각 >
우리에게 법이 그리고 정의가 필요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법은 사회가 형성되고 개인과 사유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부터였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난다.
역시 개인과 집단이라는 의미를 달리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정의 역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의라는 그 시덥잖아 보이지만, 절대적이여야 하는 개념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일까.
저자 스티븐 러벳은 '법이 곧 정의'라는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정의가 법이라는 그럴 듯한 착각>은 올바른 정의와 법의 역할이
누구나 같은 입장에서 판단하기 어렵다고 솔직히 말한다.
이는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둘 이상의 입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가해자와 피해자, 관련 이익단체 혹은 사람들의 입장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하는 법의 대리인 판사의 입장이라 할 것이다.
또한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해도, 올바른 정의란 실현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입장 차이에 의한 정의는, 결국 판단의 한계에 부딪히는데
결국은 다시 사법체계로 돌아가 그 판결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법체계가 진실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듯한 판결처럼 보이는 것은
결국은 논쟁과 모순된 견해를 수용하기 위한 '진통'인 셈이라고 결론지었다.
책 내용은 정의의 개념 자체를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른
사법체계의 판단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에, 각각의 사레들을 읽으면서,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어디로 갈지를 짐작하며 읽었던
나의 생각이 틀린 부분도 많아서 놀랍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성스캔들,
마샤 스튜어트의 주식거래의 궁색한 판결과 변명들을 통한
나름 미국 사법체계의 이슈가 되었던 이야기들도 재미있고
일반인들의 소송과 판결에 의한 예시들도 흥미롭다.
(미국이 왜 소송의 나라인지를 알수 있는 사소한 소송들도 참 많다)
사법체계가 야구라면 판사는 심판인 셈이다.
오심이 있을 수도 있고, 판정이후에는 번복자체가 힘들다.
판사의 오심을 끌어내는 선수들(변호사 혹은 검사)의 눈속임이나
혹은 상대의 흐름을 끊기 위한 트릭이 어떻게 빈번하게 사용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럼에도 작은 빈틈 하나를 이용하여 뒤집힌 판결을 끌어내는 것을 보면서
노림수를 피해가지 못하는 법체계에 대한 회의가 깊어짐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쉬운 점은 우리네와 법에 대한(특히 소송에 대한) 개념이 다르니
같은 사건일지라도 우리의 법판결과 법해석이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래도 평소 생각않고 살았던 정, 부정에 관한 나의 사고를 한번 뒤집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