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몇몇단락은 재미있지만 몇몇단락은 지루함. 저자는 유머코드를 곳곳에 깔아 놓았지만 미국 드라마,영화,소설 등에 낯선 이에게는 그 유머코드가 낯섬.게다가 2008년 이전 미국 금융위기전에 씌어졌다는 것은 큰단점. 맑스에대한 조롱은 도를넘었고 케인즈에대한 비판은 프리드먼에게 되돌려졌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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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2019-05-05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08년 이전에 씌여진 것이 흠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8년에 발생한 사태를 마치 지금까지의 소위 ‘주류 경제학‘의 견해를 전면적으로 수정하도록 강제하는 ‘이례적이고 결정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과연 그럴까요? 대공황은 이미 1920년대에 발생했고 그 후로도 경제위기는 계속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각 학파마다 그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나름의 경기변동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2008년 이전에 만들어진 ‘주류적‘인 설명들이 2008년 이후 기각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공황 이후 다양한 분파의 이들이 다양한 설명을 제시해왔고 또 제시하고 있습니다.
맑스에 대한 ‘조롱‘은 사상가 맑스에 대한 것과 인간 맑스에 대한 것이 섞여 있는데요. 사상가 맑스라면 몰라도(사회학에서는 고전사회학의 대부이고 경제학에서도 건질 것이 있겠지요.) 인간 맑스는 조롱거리 맞습니다.(부크홀츠는 더 할수도 있는 인간 맑스에 대한 조롱을 분량상의 이유인지 절제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미투 운동이 있는 요즘 같았으면 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처벌 받고 운동판에서 추방되었을 인물입니다. 재벌의 기업 사유화와 횡령을 비판하시는 분이라면 적어도 그 점에서는 맑스와 엥겔스를 옹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맑스 평전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낮은 지위의 여성을 유린하고 엥겔스가 횡령한 돈으로 자식들을 비싼 부르조아 학교에 보낸 인간 맑스보다는 오랜 계급 사회인 영국에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녀들을 공립 학교에 보낸 노동당 내 전통 좌파 제러미 코빈을 인간으로서 훨씬 존경합니다.
(햇살처럼님은 이미 읽으셨겠지만 다른 분들을 위해 소개하는데) 토트 부크홀츠의 ‘보수적‘인 관점이 거슬리는 분들이라면 전보적이라 평가받는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도 추천합니다. 잘 쓴 책이라 진영을 막론하고 환영받을만 합니다.

jose 2021-05-31 15:04   좋아요 1 | URL
가르침 감사합니다.

End 2022-07-05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폐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어빙 피셔는 주가가 너무 낮다고 평가했는데 이틀 뒤 주가가 대폭락한 1929 대공황이 일어납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를 예측 못 했고 지금도 왜 일어났는지 의견이 갈릴 뿐, 명확한 답이 없습니다. 또한 2008 금융위기는 주류경제학자들의 대다수가 예측하지 못 했습니다. 맞힌 사람은 주류경제학에 비판적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또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 많은 경제학자들이 왜 위기를 예측하지 못 했냐고 비판하기도 했죠. 이처럼 공황이 일어나고 위기가 오는 걸 주류경제학은 제대로 예측 못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류인 신고전파 경제학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그 시조 중 하나인 레옹 왈라스는 사회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신고전파 경제학을 집대성한 앨프리드 마셜은 차가운 머리 따뜻한 심장이라는 연설로 대표되는 인물입니다. 마셜의 제자인 아서 세실 피구는 복지경제학의 창시자 중 하나고 제임스 미드, 폴 새뮤얼슨, 로버트 솔로 등을 보면 중도적이거나 왼쪽에 속하는 사람들도 많죠.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 학부생과 졸업생들 사이에서 주류경제학을 자폐적 경제학이라 부르며 새로운 경제학을 주장했으나 그저 간단히 무시당했죠.

또 주류경제학은 케임브리지 자본논쟁에서 이미 그 주춧돌 하나가 빠져버렸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심지어 주류경제학의 대표자던 폴 새뮤얼슨도 그 문제를 인정했죠. 그런데도 진보적 리버럴에 가까울 로버트 솔로조차 그럼에도 주류경제학을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했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을 믿는 풍조가 강합니다. 자본논쟁이 끝난 뒤 한참이 지난 현재, 폴 크루그먼이 내린 평가에서도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했죠. 이런 면에서 주류경제학은 진영논리가 아니라 그 자체의 개혁성이 부족한 것은 맞습니다.

애초에 경제학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한 학문으로 혁명 전야의 위기에서 그 체제를 개혁하려 했던 중농주의, 산업화 초기 국가가 독점을 장려한 중상주의를 공격한 애덤 스미스,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산업화가 희망차던 시기에 가치를 창출하지 못 하는 지주를 비판한 데이비드 리카도, 산업화의 병폐가 심해지고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던 시기 노동자의 편에 선 칼 맑스,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을 당시 자본주의를 구할 개혁을 주장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정부의 개입을 축소시키기 위해 통화주의를 주창한 밀턴 프리드먼을 보면 경제학의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의 산물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답습의 시대고 애초에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주류 경제학자와 제대로 이야기 자체가 안 될 정도로 간극도 벌어진데다 지날칠 정도의 세분화로 학문을 위한 학문이 되었죠. 이런 면에서 이책이 금융위기 이후 출판됐다면 논조가 다소 달라져야 하는 것은 맞아요.

칼 맑스의 삶은 잘 모르나 그의 삶을 조롱거리로 쓴다는 것은 경제사상사를 쓰는 부분에서 별로 필요없는 부분이죠. 만약 그 부분이 공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라면 모를까 개인의 평전도 아닌 경제사상사에서는 쓸데없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신변잡기까지 시시콜콜하게 쓰려했다면 데이비드 리카도가 지주를 비판했으면서 자신도 대토지 소유자였고 국회의원직까지 돈으로 산 것, 앨프리드 마셜이 자신의 부인의 학자업을 끊어버린 것이나 여자를 차별대우 했다는 것,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우생학 활동가였고 그가 학교기금 관리에 실패한 것, 밀턴 프리드먼이 이념이 다른 사람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나 핵공격을 옹호한 것이나 쿠데타 정부를 옹호한 것까지 다 시시콜콜하게 적어야 균형감이라는 게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