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은 김바롬 작가의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이다.
참 눈길이 가는 제목이다. 특히나 프리랜서라면 더욱 더 눈길이 갈 책!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바롬 작가님. 1987년 서울 출생.
-프롤로그 중
최근까진 호주에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호주에 가면, 아니 꼭 호주가 아니라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면 인생이 크게 달라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저 게으름과 우울과 무기력으로 가득한 삶을 적도 아래로 옮겼을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요. 그곳에서도 별다를 것 없이, 아니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여유 없이 밥벌이를 전전했어요. 청소, 공사판, 세차장, 농장, 식당, 공장... 서른이 되도록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젠가 글 써서 먹고살겠다는 꿈 덕분이었어요. 내가 미처 깨닫지도 못할 만큼 느린 속도지만, 꿈을 이룰 날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었죠. 아무 근거도 없이 말이에요. 그게 그냥 허황한 희망이란 걸 바로 어젯밤에 깨달았어요. 정확히는 이제야 인정하게 된 거죠.
여러가지 일을 하며, 여러 갈래의 고민을 한 작가의 이야기가 잘 녹아 들어있는 책이다.
작가로서의 삶 이전에 덕수궁에서의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 백화점 문화센터, 편의점 알바, 복지관에서 공익으로 근무했을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 등등 여러가지의 상황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시선들이 어떠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작가의 경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가장 공감이 갔던 파트는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이다.
P.150
대통령, 발명가, 천문학자, 아나운서, 게임 개발자, 외교관... 어린 나이의 나는 보기에 멋지다 싶은 직업은 마구잡이로 집어넣은 기나긴 장래희망의 목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그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극복했는지, 나라면 하루도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을 일상처럼 견뎌왔는지는 짐작조차 못 한 채. 사실 장래희망이라기보다 철없는 상상에 가까웠던 목록은 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씩 소거됐다. 난 주인공이 아니었고, 하고 싶은 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성인을 앞둔 무렵 내게 유일하게 남은 꿈은 오직 하나, 작가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작가는 진정한 꿈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마지막까지 남은 꿈에 불과했다. 난 그 꿈을 소중히 여긴 게 아니라 그것마저 놓아버린다면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학 진학과 졸업과 취직. 좀 더 일반적인 길을 착실히 걸어가는 친구들을 흘끔흘끔 곁눈질해가며 알바 자리만 전전하면서도 별다른 성과 없이 10년이 지났다. 난 끝내 쓸데없는 똥고집을 꺾고 마침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임을 인정하게 됐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지금에 와서야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글을 쓴다.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이전에 가졌던 꿈은 사실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주목받는 것, 인정받는 것, 특별해지는 것, 바로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난 주인공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난 그저 내 삶의 주인공이기만 하면 되니까. 이전엔 이와 비슷한 말들이 너무 흔해서 그저 냉소했지만, 이제는 깊은 공감 속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시대는 더더욱 나이와 상관 없이 꿈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나는 현재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래서 이 문장들이 공감이 가기도 했고...
에세이의 매력은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바로바로 내 머릿 속으로 넣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 인생이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서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 것...
내가 에세이를 자꾸 찾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에필로그 중
인생은 성취하는 것도 견디는 것도 아닌 지향하기 위해 써야 한다는 걸, 내가 밟고 있는 이곳이 목표로 하는 저곳과 어떤식으로든 이어져 있으리라는 걸, 또 이 순간과 마침내 찾아온 상취의 순간과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무수한 순간들이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나도 이젠 알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난 못 알아듣겠지. 그렇다고 안타까울 건 없다. 겁 많고 나약하고 비겁한 못난이지만, 그 누구도, 설령 나 자신이라 해도 스의 실패할 권리를 가져갈 수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