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3호 - 202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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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계간지를 처음 읽고 너무 아쉬웠다.

그 동안 왜 읽지 않았지?


늘 문학만 편독하는 사람인지라.. 이런 류의 글은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간만에 양서를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글 속에 담겨있는 어떤 화두가

자꾸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고, 질문에 답하며 읽느라 시간은 빠르게만 흘렀다.


갈수록 내가 서 있는 땅이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다.

어디서 어떻게 갈피를 잡으며 살아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알려주는 이들도 없이 다들 떠밀리며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었다.


이렇게 바쁘고 혼돈이 가득한 세상에서

문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내밀고 싶다.

왜 그런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문학의 소용은 더 생기는 것 같다.


점점 미쳐가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오늘의 희망 한 가닥을 붙들고 써내려가는 것. 그것이 문학의 소용이자 가치가 아닐까.

생각지도 못한 담론을 나에게 던져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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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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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의미있게 읽히는 이야기란,

어떤 이야기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던 문장이 있다.

실패의 글쓰기는 예정돼 있다.

타인은 영원히 타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뭔가를 쓴다.

실패를 감당하겠다는 태도,

거기에 자기 삶의 모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일은

문학에서 종종 목격된다.


김연수 작가가 <로기완을 만났다>에 쓴 추천사에는 문학이 가지는 의의가 담겨있다.

우리는 왜 실용적이지 않은 소설을 읽는 것인가, 돈도 안 되는 문학 따위 왜 사라지지 않는가,

종이책은 사양 산업 이라는데 어째서 계속 쓰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글이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실패한다.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실패에 계속 해서 손을 뻗고,

실패를 반복하며 실패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왜?

<로기완을 만났다>는 "왜?" 라는 질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책이다.


방송작가인 '나'는 우연히 보게 된 이니셜L의 인터뷰 속 한 문장에 이끌려 그의 행적을 좇아 벨기에로 떠난다. 왜 L에게 끌리는지, 어째서 벨기에까지 갔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L 에서 로, 로에서 로기완이 되는 한 사람의 생을 관통해보려 노력한다.

보통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야기는 뻔해지기 쉽다.

그러나 <로기완을 만났다>는 다르다.

'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공감했기에, 나의 마음 깊은 곳으로 타인의 고통을 끌고 들어오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벨기에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의 한 생애를 따라가며 절절하게 아파하고 괴로움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로기완을 만났다>의 연대는 어떠한 방식인가?

어떠한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면, 1차적으로 '나와의 연대' 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로기완의 일기를 바탕으로 로기완의 행적을 좇는다.

북한에서의 삶, 도망친 연길에서의 삶, 어머니의 죽음, 이후의 벨기에에서의 시간.

가늠할 수 있는 건 일기의 문장들이지만, 그가 묵었던 숙소, 걸었던 거리, 방문한 장소들을 전부 따라가며 그의 아픔을 받아들여 본다.

"그의 아픔을 공감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붙이기 보다 그저 그렇게 한다. 그게 내가 공감하고 연대하는 방식이다. 그는 로를 좇으며 점점 자신과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왜 윤주에게서 도망쳤는가,

재이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왜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본 적도 없는 탈북인의 삶을 헤치면서 스스로의 고통과 마음을 헤아리고, 결국 스스로와 연대를 해나가게 된다.


2차적 연대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연대다.

벨기에에서 로기완이 난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박'

그는 의사였고, 또한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사실상 아픔을 가지지 않은 인간이란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박과 나는 '로기완'을 매개로 만난 사이지만, 각자 지닌 아픔 탓에 서로를 조금 더 할퀴게 된다.

그러고는 서서히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연대의 문을 연다.


한국에는 나의 곁에 재이와 윤주가 있다.

나와 재이는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나는 어떠한 마음 속 이유로 재이를 밀어낸다.

그럼에도 재이는 나를 비난하거나 혹은 저버리지 않는다. 아마 재이의 공감은 그러한 방식일 것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프게 살아온 윤주는 나를 가장 아프게 만든 인물이다.

그럴 의도가 없음에도 고통을 안기는 존재.

나의 죄책감과 괴로움, 비굴함과 치졸함, 벨기에로 떠난 이유도 실은 모두 윤주로부터 시작됐다.

결코 손을 잡지 못할 것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손을 내밀 때, 우리 마음에는 '희망' 이라는 단어가 생기는 게 아닐까.

그러한 장면을 종이 너머로 읽고 있는 나에게도.


마지막 연대는 로기완과의 연대.

로기완이 그저 한 명의 탈북인이 아니라, 나와는 완전히 다른 하나의 타인이라고 볼 때

내가 로기완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내가 나 아닌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실패의 여정이라 볼 수 있다.

로기완은 우리가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견뎌왔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세계에서,

어머니의 시신이라도 팔아 도망쳐야 하는 세계에서,

맞아도 울지 않고 견뎌야 하는 세계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느껴져도 살아야 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 없겠지만,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려내야만 한다.

지금 어딘가에도 수 없이 많은 로기완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을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공감하며 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이것은 반드시 예정된 실패다.

나도 로기완을 만나러 갔지만,

그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실패에 몸을 던지는 이유는 뭘까?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 혼자만 잘 사는 것,

어떤 인생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나와 다른 타인은 배척하는 것,


이러한 이기심은 결국 나를 잘 살게 만들까?

가만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혼자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실패를 반복해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은 아닐까.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나 아닌 다른 이를 향한 공감과 이해의 노력이 곧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로기완은 조용히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끝끝내 살아냈다.

그게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었고,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사랑이었고,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었고, 자신과 같으면서도 다른 타인을 향한 사랑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유일한 방법이 결국 내가 굳건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죽을만큼 괴로워도 끝끝내 살아가는 것이라면, 죽겠다는 마음으로 살아 내보는 것도 연대의 방식이 될 것이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었다.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읽기 적합한 책은 아니었다.

매 문장이 나를 때리고, 울컥이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책을 덮을 때,

내 마음속에는 작은 씨앗이 심겨진 것 같다.

물과 비료를 제 때 주지 못해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모양을 가진 무엇으로 자랄 것이다. 그게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상상을 하며 살며시 미소를 띄워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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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 2024 대한민국 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박현민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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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도 단단한 그림책을 만나보았다.

그림책이란 비단 귀엽기만 해서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는 나의 편견을 부숴준

박현민 작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설산에 사는 유인원인 '예티'와 친구가 되기 위한 예티 연구소의 연구원 유진의 이야기.

유진은 예티와 친구가 되기 위해 예티를 포획한다(?)

일단 첫 시작부터 어쩐지 요상한 친구되기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팝하고도 선명한 독보적인 색감으로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을

그림책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넓은 세상으로 그려낸다.

읽으며 '아, 이런 게 그림책의 매력이었지.'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매력적인 책이다.


그림은 귀엽고, 색감은 예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전혀 가볍지 않다.

예티와 유진의 관계를 보며 

'친구'란 무엇인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인간은 인간 아닌 존재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예티 연구소에서 '예티와 친구 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티를 포획해 공격성을 없애고 사회성을 학습시키는 장면들을 보면서

그것은 '진정으로 친구가 되기 위한 방법'이 맞는지,

인간 중심의 시선으로 비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이기적인 방법은 아닌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예티 연구소가 예티를 향해 당연하게 행하는 행동들이

우리 인간들이 비인간 존재를 향해 당연하게 행하는 행동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조금은 아프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종족과 한계를 뛰어넘고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과연 예티와 유진이 진정한 친구가 되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직접 알아보길 권한다.

진정한 친구의 개념이 사라지고, 나와 다른 존재에게는 비난과 혐오만이 만연한 시대에서

우리 안에 우정을 향한 따뜻한 불씨를 되살리는 기분좋은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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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나라 선녀님
허태연 지음 / 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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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고 뻔한 킬링타임용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묘사는 너무 자세해서 외려 구차해졌고,

어떤 설명은 너무 단면적이라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묘사나 문장을 떠나 어떤 한 덩어리로 뭉쳐있는 중심이 있었다.

모든 것을 가진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집 사모님이

중고 거래에 목을 메는 이유가,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니.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내 고통에 한 마디씩 얹는 사람들 말고

나의 아픔을 모르는 

그저 물건을 사고 파는 관계로 만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


중고 거래의 본질은

내가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을 팔거나

내가 사기엔 너무 비싼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중고나라 선녀님이 중고 거래를 하며 느끼게 된 것은

물건 보다는 사람에 있었다.

그 물건을 사고, 사용하고, 아꼈던 사람들.

그리고 결국은 어떤 이유로 팔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어떤 물건을 그와 비슷한 혹은 전혀 다른 이유로 사는 사람들.

중고 거래라는 것은,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 보다는 그 물건에 가격을 매기고 지불하는 과정에서

물건에 얽힌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과정이었다.


중고 물건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과 선녀님이 전해주는

따뜻함을 나도 중고로 받은 듯한 기분이 들어

훈훈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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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 1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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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베크만의 <위너>1편만 읽었기에 전체적인 리뷰는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오베라는 남자>를 아주 재밌고 감동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프레드릭 베크만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읽었다.

위너 1편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 관계, 상황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스웨덴 숲 속의 두 마을, 그야말로 하키의, 하키에 의한, 하키를 위한 마을.

베어타운과 헤드는 하키를 사랑하지만 서로를 죽도록 증오한다.

일련의 사건으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얽히게 되면서

그들의 증오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엉켜버린다.


그들에게 몰아닥치는 거대한 폭풍.

마을을 엉망으로 만든 거대한 폭풍으로 인해 두 마을의 화해의 접점을 찾게 된다.

서로 상종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지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은 누군가를 위해 힘을 합친다.

서로를 마을의 주민이 아닌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보기 시작한다.


아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조금은 복잡한 서사가 그려지지만,

책을 덮을 즈음에는 머릿속에 소복하게 눈 내린 마을의 정경이 펼쳐지고

각 인물들의 관계도가 얼추 정리된다.

이 관계도와 상상 속의 마을 풍경을 그대로 가지고 2권을 만나러 가면 된다.



마을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과, 상처를 입힌 사람과

방황하는 사람과, 좌절하는 사람과

실패한 사람과, 시도하는 사람과

파헤치려는 사람과, 믿는 사람과

순수한 사람과, 속물같은 사람과

이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마을에서 벌어질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결말은 알 수 없지만, 책의 제목처럼 이들은 서로를 위너로 만들 것이다.

승패를 가르며 상대를 억누르는 것만이 승리가 아님을 알게 되며

서로의 상처를 봉합하고 더듬고 보듬으며 모두가 위너로 서게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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