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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것이라 : 미디어와 음란물 편 디지털 세대를 위한 성경적 성교육 1
김지연 지음 / 두란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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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와 음란물 편, 너는 내 것이라를 읽고 특별히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손에 쥐어 진 악,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을까?

 

사단의 큰 전략 돈과 성.

 

그것에 대한 가치관을 모두 바껴버린다.

 

책의 내용처럼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이라며 우리가 가진 크리스천으로 가지고 있는 성경적 가치관을 폄하해버린다.

 

N번방을 비롯한 성범죄와 특별히 점점 더 악랄해지며 어려지는 죄의 수위가

 

미디어를 통해 얼마나 끊기 어려운 악인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더욱 깨어있어 영적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악마의 삶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그 이야기처럼.

 

스스로 끝낼 수 없는 악마의 삶을 끝낼 수 있도록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선하게 만드신. 것들을 세상에 더욱 선포해야한다.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고,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교회 교사들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독서모임을 통하여 나눠도 좋을 것 같다.

 

특별히 교사모임 가운데에 교사들 가운데서도 자유롭지 못함이 있을 줄 알기에

 

솔직히 나누는 가운데 같이 노력하는 부분, 같이 회개하는 부분들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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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살아난 가정 - 예수님이 왕이신 가정의 비밀
유기성 지음 / 두란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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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살아난 가정>

지은이 : 유기성

출판사 :두란노

 

이 책은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들에게 향하는 어투로 쓰여졌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크리스천 예비부부나 커플들에게도 낭만적인 결혼을 넘어 현실적인 책임감을 가지게 하기에 유용할 것 같다.

 

가정을 주제로 설교하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결혼하기 전에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자녀 교육의 법칙"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은 후에는 자녀 교육의 권면이라고 설교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녀가 사춘기가 되자 더 이상 자녀교육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이를 낳아서 길러 보면 자녀 교육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하고 설교할 힘이 확 떨어집니다.

p.12-13

 

- 책의 서두에 기록된 내용이다.

나도 아직 미혼전도사이다. 가정을 이뤄갈 꿈에 젖어있는.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선포하라고 하는 말씀의 주제가 자녀교육이나 가정에 관한 일일 때가 있었다.

가정을 이뤄보지 않은 새내기 전도사의 입에서 가정에 대한 말씀이 나올 때 얼마나 신빙성(?)이 없을지 스스로도 생각해보곤 했다.

혹시나가 역시 가정에 대한 설교는 가정을 이뤄보고 나서 어려움과 갈등을 겪고 더 성숙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때에 맞는 말씀을 선포하게 하심을 신뢰하며 나아간다.

가정을 이루고도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후 아이들먼 목사님은 결혼식 주례를 할 때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달콤한 꿈에 사로잡혀 있는 신랑, 신부에게

결혼 서약이 실제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황홀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신부에게 말해 줍니다.

이제 당신이 결혼하고 1년쯤 지나 예쁜 속옷을 입고 침실로 들어가면 배불뚝이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침대에 누워 시리얼을 접시째로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축구 경기를 보고 있겠지요?

남편은 시리얼을 떠먹는 중간, 스푼으로 가려운 등을 긁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서약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황홀해하는 신랑에게 이야기합니다. “그즈음 아내는 당신 어머니처럼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리얼을 먹을 때 소리 내지 마.’, ‘식탁 위에서 먹어.’ 잔소리를 하겠지요. 말만 아니라 몸매도 어머니처럼 변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서약하시겠습니까?

p.70

 

배우자가 승진할 때나 해고될 때나, 아내가 임신할 때나 유산할 때나, 집을 구입할 때나 집을 팔고 좀 더 싼 집으로 이사할 때나,

근사한 외식을 할 때나 한 주 내내 라면만 먹어야 할 때나, 많은 돈을 모았을 때나 카드 대금이 연체되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늙어서 휠체어를 탈 때나 순종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서약을 잊어버리니까 자꾸 싸우는 것입니다.

p.71

 

-보통 예전에는 결혼에 대한 서약을 검은 무리가 파뿌리(흰머리)될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지금은 아플때나 슬플때나 아내(남편)에 대한 도리를 다할 것을 묻는 내용으로 서약을 하는 것 같다.

표현은 달라지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연애관, 결혼관에 대해 추천하는 책 중에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라는 책에서도 결혼은 낭만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설거지와 똥기저귀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현세대들은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결혼의 대한 선택을 미룬다.

후회할 일이 없을 수 없다. 더욱 죄성 가운데에 서로 부딪힐 일이 많아지는 것이 당연지사다.

계속 혼자였던 내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깨끗해지고 다시 십자가로 회복되는 과정을 누리는 것처럼,

연애를 하여 둘이 될 때도, 더 나아가 결혼으로 같이 살게 될 때도, 자녀를 낳아 기를 때도

더 심화되는 회개와 자기 수련의 과정이 이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결혼이 좋은 부분만을 이야기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가정만큼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부만큼 상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관계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배우자가 아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배우자가 변했다고 속상해하는 분이 있는데,

결코 변한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짜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사람이 괴로운 것입니다. 배우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 연약함, 죄성을 끌어안고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엄청난 복인데, 대가 지불이 심각하게 큽니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신적인 죄성이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그대로 고통이 되고 짐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가족으로 살게 하실 때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신 것이 용서의 은혜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방의 연약함과 문제를 용서하면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순간부터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면 더 이상 가족이 될 수가 없습니다.

p.112

 

아이를 낳았다는 말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제부터는 한도 없는 용서를 하고 사는 삶을 각오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면서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자녀도 철이 들면 이제는 부모를 끊임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p.113

 

결혼 서약은 결혼하는 커플이 당시 자기들이 느끼는 감정을 고백하는 글이 아닙니다.

앞으로 결혼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어려운 일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약속하는 질문입니다.

아내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아내에게는 더 이상 낭만도 없고, 성관계도 있을 수 없고, 동반자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우리도 정말 치매에 걸린 아내 같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신랑이신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부인하고

내가 신부라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린 적이 한두 번인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끝까지 이혼하시지 않았습니다. 항상 같이 계십니다. 끝까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나를 사랑하느냐?“라고 계속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치매에 걸린 신부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해골 골짜기, 스올의 골짜기를 지나가셨습니다.

신부인 우리는 예수님께 하나도 덕이 될 것이 없습니다. 제대로 한 일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랑 되신 주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고, 떠나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p.127

 

- 결혼고사라는 시험지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커플이나 예비부부가 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하며 풀기에 좋은 컨텐츠이다.

그 곳에 질문에서도 배우자가 사고를 당하여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부부간의 관계도 없고, 낭만도 없고, 일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하다하더라도 끝까지 부부의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하는 물음이었다.

그런데, 비크리스천에게 이러한 질문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크리스천인 우리에게도 시사할 점이 많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이지만, 한 눈 팔때가 더 많지 않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손길을 끝지 않으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자신없는 우리의 대답에,

흔들리는 우리의 대답에 그거면 됬다..하시는 그 일방적이고 끝없는 사랑을 기억하며

가정에서도 배우자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156 남편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내가 하는 말은 남편을 쉽게 무너뜨립니다.

아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남편에게는 비수로 찌르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처음에는 아내를 무시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고, 부인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나는 패배자야. 나는 안 되나 봐. 나는 위선자야. 나는 속물 중에 속물이야. 나는 괴물이야.’하면서 서서히 무너집니다.

 

157 제 모든 것을 알고있는 아내가 저를 칭찬하면 다릅니다.

아내가 당신은 참 훌륭합니다. 오늘 말씀이 정말 은혜로웠습니다하면 진짜로 혼자 화장실에 가서 춤출 일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칭찬하고 인정할 때 남편은 살아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남편의 모든 것을 알고있는데 그 아내로부터 격려를 받고 높임을 받으면 남편은 속에서부터 뜨거운 열정이 일어납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섭니다. 더 잘하고 싶어집니다.

 

158 남자는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칭찬받을 때, 존중히 여김을 받을 때 행복하게 느끼고, 무시당할 때 가장 불행하게 느끼는 존재입니다.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많은 아내가 남편을 도와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면서 남편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잔소리가 되고 면박을 주는 단계까지 갑니다.

잘 살아 보자는 것이고, 남편 잘되게 해 보자는 의도이겠지만, 이미 남편은 죽었습니다. 살아 있지만 실제로 마음은 죽었습니다.

남자의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아내로부터 자존심 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59 남자들에게는 이런 아내가 필요합니다. 무시당하고, 원하는 대로 일이 안되고, 사람들로부터 지적당하고,

멸시당할 때 끝까지 지지자가 되어 주고, 용기를 주고, 지원해주는 아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돕는 배필로 남자에게 여자를 주신 것입니다.

아내가 무언가 부족하고 문제가 남편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편의 장점은 남편에게 직접 말해 주고,

남편의 단점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156-159

 

-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것은 아내의 말이다.

자기를 잘 알고있는 부인의 쓴소리는 자신감을 하락시킨다.

반대로 자기를 잘 알고있는 부인의 칭찬은 남편을 춤추게한다.

그런데, 시도해보지만 좋은 이야기, 세워주고 칭찬해주는 이야기를 하기가 정말 어렵다.

나는 죽었다 생각하고 해야되지만.....

 

무엇보다 머리가 된 남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사람이 가장인 남편입니다.

왜 하나님과의 가장 중요한 관계를 아내에게 맡깁니까?

그러니 기도는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 해야 합니다.

171

 

- 한 목사님께서 사모님의 기도로 목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목회자의 아내가 될 나에게 기도를 많이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당연한 말씀이었지만 가정에서 아버지의 기도도 너무 중요하다.

가정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

하나님의 비전과 뜻을 선포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기도는 둘 다 해야하지만, 더욱 남편된 가장들이 가정의 대표가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서로 깨어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부모가 자녀에게 복을 빌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축복할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모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부모님의 손을 내 머리에 얹고 기도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아무리 미숙한 기도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빌어주는 복은 자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에게는 부모님이 빌어주는 복이 필요합니다.

182

 

- 부모에게는 자녀를 축복할 권세가 있다.

첫 사례비를 받고 목사님께서 엄마, 아빠에게 사례비를 다 드리고 축복기도를 받으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기도를 해달라고 하기가 어렵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 아빠, 엄마의 기도가 큰 도움이 된다.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복을빌어주는 것. 더욱 복된 것 같다.

그렇게 하려면 삶에서 자녀와의 관계가 원만해야 하겠다.

 

-가정 안에서도 십자가 사랑,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한다는 점을 더욱 알게되는 책이었다.

오직 주님의 용서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디든지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더욱 주님 주신 만남을 이어가는 은혜가 필요하다.

결혼 전에 미리 준비해야하며, 미리 기도해야 되는 부분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귀한 가정을 이룸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큰 비전을 보지 못하고,

결혼을 선택하며,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더욱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했지만 결혼을 하고나서도 자녀교육에 대한 설교, 선포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기초 단위, 가정 가운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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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낙심하는가? - 어떤 상황에도 은혜는 가까이 있다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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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낙심하는가라는 책은

낙심과 절망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우리의 소망되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낙심이 어디에서 오는지,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으 로현대 사회에 더 채우기 위해, 더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노력하지 만채워지지 않아 낙심하는 그리스도인들,평신도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주요내용>

낙심의 한자를 풀어 보면, ‘떨어질’ ()에 마음’ ()입니다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이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p.17

 

첫째낙심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평상시에 우리는 밖에서 들어오는 메시지를 주로 다룹니다. (중략그런데 외부에서 끊임없이 우리 내부로 침투해 들어오는 이 메시지들에는 어떤 의도나 목적이 담겨있게 마련입니다. (중략그러므로 성경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내게 주입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역으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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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스캇 솔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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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갇힌 인간 선 밖에 예수

 

part1. 첫 번째 선, 교회 안에 그어진 선

 

우리 편이십니까, 저들 편이십니까

 

 

- 요즘 교회 안, 밖 할 것 없이 나의 편, 남의 편. 여러 부분에서 편 가르기하여 다른 편 사람들을 질타하는 광경들을 자주 목격할 쯤이었다. 여러 주제를 통해 편이 갈라져있는 현대 사회를 비판한 듯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책이 시사하고 있었다.

 

 

1. 정치적 성향, 진보냐 보수냐

 

 

우리 편이십니까? 적들의 편이십니까?” 이에 천사는 둘 다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편이신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편인가이다.

 

우리는 정치와 정부뿐 아니라 다른 모든 문제에서도 이 질문을 해야 한다.

 

p.34

 

- 먼저 정치적인 이견이다. 교회 안에서도,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서로다른 정당을 지지하기 마련이다. 강단 위에서 목사님의 정치적인 발언에 불편해하는 성도들도 있으며, 성도들끼리 하야 서명을 가져와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우리는 기독교를 고수하고 지키는 방법으로 보수진영을 택한다. 그러나, 보수진영도 잘하냐고 물을 때 대답할 말은 없다. 정권이 바뀌고 다른 정권을 질타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당연한 방법처럼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털어 먼지 하나 안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 옳다. 어느 편이 옳다 할 수 없다.

 

대신 본문처럼 예수님이 어떤 편이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편인지.

 

보수진영을 주장하는 우리가 그의 편인지. 진보진영을 주장하는 우리가 그의 편인지가 중요하다.

 

정치적 색깔, 편향보다 중요한 것이 그런 우리가 예수님 편인지이다.

 

이어지는 다른 주제들에서도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인 것 같다.

 

 

 

2. 태아냐 가난한 사람이냐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중요했다.

 

예수님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셨지만, 구분이 특별히 관심과 애정을 쏟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는 이 두 집단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특별히 애를 쓰셨다.

 

그들은 바로 보수주의자들이 신경을 쓰는 어린아이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신경을 쓰는 가난한 자들이다.

 

p.61

 

 

- 누가 쓸모없는 사람을 결정할 것인가

 

보수주의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신경쓰고, 진보주의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신경쓰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또 정치적 색깔에 맞물려 어느 진영인가. 누구를 약자로 볼 것인가. 누구의 편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다음 장 주제 누가 쓸모없는 사람을 결정할 것인가가 답이 되는 것 같다. 예수님꼐서는 모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한 국가의 수장부터, 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어부, 세금을 거두는 세리.. 등등 과부와 사마리아 여인, 어린 아이, 부자까지 한계와 선이 없으셨다.

 

 

3. 나홀로 신앙이냐 공동체냐

 

 

하지만 과연 탈퇴가 답인가?

 

비록 골치 아픈 사람들이라 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예수님이 애정을 담아 신부라고 부르시는 교회를 거부하고도 예수님을 우리의 아버지이며 형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은혜, 인내, 온유, 용서, 오래 참음 같은 예수님의 값없는 선물을 남들에게 베풀기를 거부하면서 그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우리도 골치 아픈 사람들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로마서 5:8)

 

p.85

 

- 이 책 어딘가에서 가족과 다툼이 일어난다고해서, 가족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가족을 버리냐?라는 말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버릴 수 없고,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의견과 여러 가지 생활습관 등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린 하나님 안의 가족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다. 맞다.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그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일러주신 적이 있었다.

 

펑펑울며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람들을 내가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를 자꾸 까먹는다.

 

하나님이 나도 용납해주셨음을 자꾸 까먹는다. 나도 하나님 안에 베드로. 부인하며, 나약한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4. 돈이 죄냐 탐욕이 죄냐

 

 

성경에서 번영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주된 관심사는 부를 소유했느냐 소유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부와 가난에 관한 성경의 초점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느냐이다.

 

성경은 부유할 때나 궁핍할 때나 변함없이 만족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자신의 부로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궁극적인 분깃이요 기업이라는 진리 속에서 살 때 참된 만족이 찾아온다.

 

p.101

 

 

 

 

-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부에 있어서 부가 많냐, 적냐가 문제가 아니라 주신 것에 만족하는지가 초점이라고.

 

궁핍할 때나 부유할 때나 자족하기를 배웠나니라고 이야기했던 바울처럼.

 

우리는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한다. 있다가도 없는 것이 돈이다. 돈에 매여살지 말자. 하나님을 나의 부로 여기자.

 

 

5. 주류냐 비 주류냐

 

 

지금까지 미첼 목사는 나와 자기 교회의 성도들에게 피부색을 냉소와 절망의 눈이 아닌 소망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피부색을 분리와 소외, 배척의 눈이 아닌 모든나라와 백성, 민족, 방언으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눈으로 보라고 가르쳤다.

 

 

p.132

 

 

 

6. 남자냐 여자냐

 

 

나는 안수를 받은 뒤에도 리디머교회에서보다 여성들을 더 무시하는 한 장로교회에서 사역한 적이 있다.

 

나는 항공우주와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부르심을 받은 일이 그런 어려움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크리스천에게 말하고 싶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영역 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말라.

 

 

161

 

- 오늘 나혼자산다를 통해 여자배우가 사다리와 못, 드릴을 이용해 커텐을 달고 전등을 달며,

 

나무로 발코니를 만드는 것을 보며 신기하기도했고, 나에게도 저런 재능이 있을까 생각했다.

 

힘도 필요로 하고 기술도 필요로 하는 주로 남자들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매력있어 보였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재능, 달란트 주님 주신 것이기에 성별에 관련없이 쓰임 받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부르심에 방해되지 않도록 제한하지 않고 여러일들을 배우며 재능을 찾아가는 일을 거듭해야겠다.

 

 

 

part2 두 번째 선, 교회 안과 밖을 가르는 선

 

세상에서 기독교는 왜 환대받지 못하는가

 

 

7. 크리스천들은 완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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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베드로는 몇 번이나 인종주의와 비겁함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하지만 바로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예수님이 곁에서 함께 기도해 줄 사람을 필요로 했을 때 베드로는 잠에 빠져 있었다. 예수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에 함께해줄 사람이 필요했을 때 베드로는 그분을 버리고 부인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정하셨다.

 

173

 

 

-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에 상관하지 않고 우리를 모두 용납하며 이해하셨다. 성도들의 모습을 다 용납하고 이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비신자들의 의견을 용납하며 이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아는양 교만하며 아파한다.

 

-연결-

 

12. 크리스천들은 너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한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이다.

 

289

 

 

인정 중독자

 

 

-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정으로 가득 차있다. 본인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고, 본인의 하루 일과와 뿌듯함을 글을 통해 전달한다.

 

댓글에는 그 사람을 인정하고 세워주는 말이 가득하다. 그로 인해 행복을 얻는다.

 

진정한 겸손은 침묵을 통해 전해진다. 자신을 덜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의 반대로 전해진다.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은 내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책임전가가 인류의 본성인 것 같다.

 

 

8. 심판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만약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수록 좋은 의사는 공격적인 치료법을 단행한다.

 

중독이 심할수록 가족을은 더 무시무시한 말로 경각심을 일으킨다...

 

친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있을수록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크리스천이라면

 

현실에 관해서 더 직접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204

 

 

- 심판과 지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고 영혼의 병듬을 이야기할 때 정확히 이야기하여 수술할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다. 죄에 대한 직면, 심판, 지옥에 대한 직면은 불가분의 요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반응이 두려워서, 또는, 내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심각한 상황일 때 정확히 도려내야한다. 그런 담대함의 칼이 있어야 한다.

 

 

9. 그리스도는 좋지만 크리스천들은 싫다

 

위선에 진저리가 난 사람들을 위한 탈출구

 

 

위선자들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스러움 뿐이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스러움을 통해서만 우리는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

 

204

 

 

- 기독교인이 위선적이라는 말을 반박할 수 없다. 하나님, 예수님을 잘 드러내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소금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수님의 사랑스러움 뿐이다. 예수님의 겸손함뿐이다. 더욱, 우리가 드러나지 않고 예수님만이 드러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헌신과 희생을 해야한다.

 

 

10. 기독교의 성 관념은 고루하다.

 

 

서로 벌거벗고 부끄러움 없이 서로의 품에 안길 날을 고대하며 결혼식 날까지 순결을 지키는 약혼 남녀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의 가장 깊은 필요와 욕구를 궁극적으로 채워 주실 날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247

 

 

- 육체적으로 벌거벗는 것 뿐 아니라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다. 서로 앞에서는 물론이고 하나님 안에서도 우리의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육적으로만 치우쳐 결혼 전 기대감 없이, 성적으로 소비하는 상황들을 많이 보게 된다.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사랑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는 진정 사랑한다면 낱낱이 드러난 모습도 용납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의 때에 결혼하는 것이 좋다. 결혼을 그냥 인생사의 하나가 아니라 본문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신부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이야기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잊지않고 살아가야겠다.

 

내 삶에 결혼이 있을지에 목매이지 말고, 하나님만 기대하고 고대하자.

 

 

11. 왜 이 땅에 고통이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분노와 슬픔에 개인적으로 반응하신다. ...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공감하셨을 뿐 아니라 각자의 독특성에 따라그 공감을 표현하셨다

 

. p.263

 

- 신정론. 지금의 시대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주제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고통을 주셨을까? 왜 믿는 사람들이 고난을 받으며, 자연재해를 입는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섭리를 다 알 수 없으나 다 밝혀질 날이 있다.

 

그런 고통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우리에게 질책하시지 않고 그 반응따라 임재하여주신다.

 

 

이 책을 교회 안에서 여러 질문을 가진 성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모든 챕터의 결론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가 답이 될 것 같다.

 

편을 가르고 배척하는 현대사회의 습성가운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초점으로

 

이상한 걸로 싸우지 않고 주님앞에 바로 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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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 팀 켈러의 7가지 핵심 가치
CTC코리아 엮음, 전재훈 외 옮김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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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당시의 문화 속에서 공유되는 이야기들, 즉 농사나 목축, 혹은 고기 잡는 어부 등을 비유로 삼아 복음을 전하신 것이 바로 상황화였다. 상황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우리도 이미 상황화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상황화에 대한 고민 없이 언어나 비유를 사용하다 보면 문화와 너무 비슷해져서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고, 반대로 문화와 너무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되면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상황화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 시기와 특정 지역에서 사람들이 삶에 대해 갖는 질문에 대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형태로, 그리고 그들이 힘 있게 느낄 수 있는 호소와 논증을 통해서, 비록 그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고 심지어 반대하지라도 성경의 답을 주는 것이다.

p.26

세상의 모든 종교는 ‘내가 잘해야 비로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복음은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예수님이 먼저 나를 온전히 받아 주셨기에 내가 순종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고 순종은 그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 복음이지만, 은혜와 순종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순종과 은혜로 바뀌고 만다.

복음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도 계속해서 자극받고 갱신되지 않으면 자연스레 종교로 다시 미끄러지게 된다. p.31

복음의 능력은 두 가지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첫째, “나는 내가 감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죄인이고 허물 많은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 “나는 내가 감히 바랐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용납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p.34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조차도 어쩌면 하나님보다 자신의 성실함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목회자의 마음에도 훌륭한 주의 종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설교를 잘해야 한다고 느끼는 목회자도 그것을 통해 삶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거나, 설교에 은혜 받았다는 인사를 받고 싶은 것일 수 있다. 때로는 설교를 통해 성도들을 통제하려고 하거나, 교회 내에서 특정한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할 수도 있다.

p.4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의 문제는 그것이 단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에 있는 우상은 반드시 우리를 배신한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p.41


아마도 당신이 무엇을 예배하는 그것에 산 채로 삼켜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돈이나 물질을 예배한다면, 그리고 그것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찾고 있다면, 당신은 결코 충분히 가지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가져도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의 몸이나 외모, 성적 환상을 예배한다면 당신은 늘 자신이 못생겼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세월의 흔적이 몸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아직 무덤에 묻히기 전인데도 수만 번이나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권력을 예배한다면 결국 약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권력을 다른 사람들 위에 부리고 싶어질 것이다. 당신이 지성을 예배한다면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겠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들의 예배에서 가장 불길한 것을 이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의 근본적 상태이다.

이 책을 팀켈러 목사님의 책을 시간적으로 모두 보기 어려운 목회자들에게 추천한다.

챕터마다 책을 읽었던 목사님들의 요약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이 책 한권만으로 팀켈러 목사님의 신학과 사상을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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