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스캇 솔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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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갇힌 인간 선 밖에 예수

 

part1. 첫 번째 선, 교회 안에 그어진 선

 

우리 편이십니까, 저들 편이십니까

 

 

- 요즘 교회 안, 밖 할 것 없이 나의 편, 남의 편. 여러 부분에서 편 가르기하여 다른 편 사람들을 질타하는 광경들을 자주 목격할 쯤이었다. 여러 주제를 통해 편이 갈라져있는 현대 사회를 비판한 듯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책이 시사하고 있었다.

 

 

1. 정치적 성향, 진보냐 보수냐

 

 

우리 편이십니까? 적들의 편이십니까?” 이에 천사는 둘 다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편이신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편인가이다.

 

우리는 정치와 정부뿐 아니라 다른 모든 문제에서도 이 질문을 해야 한다.

 

p.34

 

- 먼저 정치적인 이견이다. 교회 안에서도,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서로다른 정당을 지지하기 마련이다. 강단 위에서 목사님의 정치적인 발언에 불편해하는 성도들도 있으며, 성도들끼리 하야 서명을 가져와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우리는 기독교를 고수하고 지키는 방법으로 보수진영을 택한다. 그러나, 보수진영도 잘하냐고 물을 때 대답할 말은 없다. 정권이 바뀌고 다른 정권을 질타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당연한 방법처럼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털어 먼지 하나 안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 옳다. 어느 편이 옳다 할 수 없다.

 

대신 본문처럼 예수님이 어떤 편이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편인지.

 

보수진영을 주장하는 우리가 그의 편인지. 진보진영을 주장하는 우리가 그의 편인지가 중요하다.

 

정치적 색깔, 편향보다 중요한 것이 그런 우리가 예수님 편인지이다.

 

이어지는 다른 주제들에서도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인 것 같다.

 

 

 

2. 태아냐 가난한 사람이냐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중요했다.

 

예수님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셨지만, 구분이 특별히 관심과 애정을 쏟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는 이 두 집단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특별히 애를 쓰셨다.

 

그들은 바로 보수주의자들이 신경을 쓰는 어린아이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신경을 쓰는 가난한 자들이다.

 

p.61

 

 

- 누가 쓸모없는 사람을 결정할 것인가

 

보수주의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신경쓰고, 진보주의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신경쓰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또 정치적 색깔에 맞물려 어느 진영인가. 누구를 약자로 볼 것인가. 누구의 편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다음 장 주제 누가 쓸모없는 사람을 결정할 것인가가 답이 되는 것 같다. 예수님꼐서는 모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한 국가의 수장부터, 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어부, 세금을 거두는 세리.. 등등 과부와 사마리아 여인, 어린 아이, 부자까지 한계와 선이 없으셨다.

 

 

3. 나홀로 신앙이냐 공동체냐

 

 

하지만 과연 탈퇴가 답인가?

 

비록 골치 아픈 사람들이라 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예수님이 애정을 담아 신부라고 부르시는 교회를 거부하고도 예수님을 우리의 아버지이며 형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은혜, 인내, 온유, 용서, 오래 참음 같은 예수님의 값없는 선물을 남들에게 베풀기를 거부하면서 그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우리도 골치 아픈 사람들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로마서 5:8)

 

p.85

 

- 이 책 어딘가에서 가족과 다툼이 일어난다고해서, 가족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가족을 버리냐?라는 말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버릴 수 없고,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의견과 여러 가지 생활습관 등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린 하나님 안의 가족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다. 맞다.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그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일러주신 적이 있었다.

 

펑펑울며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람들을 내가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를 자꾸 까먹는다.

 

하나님이 나도 용납해주셨음을 자꾸 까먹는다. 나도 하나님 안에 베드로. 부인하며, 나약한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4. 돈이 죄냐 탐욕이 죄냐

 

 

성경에서 번영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주된 관심사는 부를 소유했느냐 소유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부와 가난에 관한 성경의 초점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느냐이다.

 

성경은 부유할 때나 궁핍할 때나 변함없이 만족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자신의 부로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궁극적인 분깃이요 기업이라는 진리 속에서 살 때 참된 만족이 찾아온다.

 

p.101

 

 

 

 

-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부에 있어서 부가 많냐, 적냐가 문제가 아니라 주신 것에 만족하는지가 초점이라고.

 

궁핍할 때나 부유할 때나 자족하기를 배웠나니라고 이야기했던 바울처럼.

 

우리는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한다. 있다가도 없는 것이 돈이다. 돈에 매여살지 말자. 하나님을 나의 부로 여기자.

 

 

5. 주류냐 비 주류냐

 

 

지금까지 미첼 목사는 나와 자기 교회의 성도들에게 피부색을 냉소와 절망의 눈이 아닌 소망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피부색을 분리와 소외, 배척의 눈이 아닌 모든나라와 백성, 민족, 방언으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눈으로 보라고 가르쳤다.

 

 

p.132

 

 

 

6. 남자냐 여자냐

 

 

나는 안수를 받은 뒤에도 리디머교회에서보다 여성들을 더 무시하는 한 장로교회에서 사역한 적이 있다.

 

나는 항공우주와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부르심을 받은 일이 그런 어려움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크리스천에게 말하고 싶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영역 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말라.

 

 

161

 

- 오늘 나혼자산다를 통해 여자배우가 사다리와 못, 드릴을 이용해 커텐을 달고 전등을 달며,

 

나무로 발코니를 만드는 것을 보며 신기하기도했고, 나에게도 저런 재능이 있을까 생각했다.

 

힘도 필요로 하고 기술도 필요로 하는 주로 남자들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매력있어 보였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재능, 달란트 주님 주신 것이기에 성별에 관련없이 쓰임 받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부르심에 방해되지 않도록 제한하지 않고 여러일들을 배우며 재능을 찾아가는 일을 거듭해야겠다.

 

 

 

part2 두 번째 선, 교회 안과 밖을 가르는 선

 

세상에서 기독교는 왜 환대받지 못하는가

 

 

7. 크리스천들은 완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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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베드로는 몇 번이나 인종주의와 비겁함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하지만 바로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예수님이 곁에서 함께 기도해 줄 사람을 필요로 했을 때 베드로는 잠에 빠져 있었다. 예수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에 함께해줄 사람이 필요했을 때 베드로는 그분을 버리고 부인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정하셨다.

 

173

 

 

-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에 상관하지 않고 우리를 모두 용납하며 이해하셨다. 성도들의 모습을 다 용납하고 이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비신자들의 의견을 용납하며 이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아는양 교만하며 아파한다.

 

-연결-

 

12. 크리스천들은 너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한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이다.

 

289

 

 

인정 중독자

 

 

-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정으로 가득 차있다. 본인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고, 본인의 하루 일과와 뿌듯함을 글을 통해 전달한다.

 

댓글에는 그 사람을 인정하고 세워주는 말이 가득하다. 그로 인해 행복을 얻는다.

 

진정한 겸손은 침묵을 통해 전해진다. 자신을 덜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의 반대로 전해진다.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은 내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책임전가가 인류의 본성인 것 같다.

 

 

8. 심판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만약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수록 좋은 의사는 공격적인 치료법을 단행한다.

 

중독이 심할수록 가족을은 더 무시무시한 말로 경각심을 일으킨다...

 

친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있을수록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크리스천이라면

 

현실에 관해서 더 직접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204

 

 

- 심판과 지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고 영혼의 병듬을 이야기할 때 정확히 이야기하여 수술할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다. 죄에 대한 직면, 심판, 지옥에 대한 직면은 불가분의 요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반응이 두려워서, 또는, 내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심각한 상황일 때 정확히 도려내야한다. 그런 담대함의 칼이 있어야 한다.

 

 

9. 그리스도는 좋지만 크리스천들은 싫다

 

위선에 진저리가 난 사람들을 위한 탈출구

 

 

위선자들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스러움 뿐이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스러움을 통해서만 우리는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

 

204

 

 

- 기독교인이 위선적이라는 말을 반박할 수 없다. 하나님, 예수님을 잘 드러내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소금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수님의 사랑스러움 뿐이다. 예수님의 겸손함뿐이다. 더욱, 우리가 드러나지 않고 예수님만이 드러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헌신과 희생을 해야한다.

 

 

10. 기독교의 성 관념은 고루하다.

 

 

서로 벌거벗고 부끄러움 없이 서로의 품에 안길 날을 고대하며 결혼식 날까지 순결을 지키는 약혼 남녀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의 가장 깊은 필요와 욕구를 궁극적으로 채워 주실 날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247

 

 

- 육체적으로 벌거벗는 것 뿐 아니라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다. 서로 앞에서는 물론이고 하나님 안에서도 우리의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육적으로만 치우쳐 결혼 전 기대감 없이, 성적으로 소비하는 상황들을 많이 보게 된다.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사랑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는 진정 사랑한다면 낱낱이 드러난 모습도 용납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의 때에 결혼하는 것이 좋다. 결혼을 그냥 인생사의 하나가 아니라 본문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신부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이야기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잊지않고 살아가야겠다.

 

내 삶에 결혼이 있을지에 목매이지 말고, 하나님만 기대하고 고대하자.

 

 

11. 왜 이 땅에 고통이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분노와 슬픔에 개인적으로 반응하신다. ...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공감하셨을 뿐 아니라 각자의 독특성에 따라그 공감을 표현하셨다

 

. p.263

 

- 신정론. 지금의 시대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주제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고통을 주셨을까? 왜 믿는 사람들이 고난을 받으며, 자연재해를 입는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섭리를 다 알 수 없으나 다 밝혀질 날이 있다.

 

그런 고통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우리에게 질책하시지 않고 그 반응따라 임재하여주신다.

 

 

이 책을 교회 안에서 여러 질문을 가진 성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모든 챕터의 결론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가 답이 될 것 같다.

 

편을 가르고 배척하는 현대사회의 습성가운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초점으로

 

이상한 걸로 싸우지 않고 주님앞에 바로 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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