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은 좋은일이다. 우리는 살아있다가 떠난 사람들을 슬퍼하고 눈물흘린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은 슬픔이라는 말로 대치된다. 슬픔의 반댓말은 기쁨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한다면 살아있는 것은 기쁘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얼마나 기뻐하면서 살아갈까? 기쁨보다 슬프고 아픈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그러므로 아프다.
저자는 캘리포니아대학의 법대교수로 누구나 부러워하고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파리여행을 갔다 오면서 불행한 일에 휘말리고 만다. 비행기 연착으로 인한 소동중에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 것이다. 몸저 누워버린 저자는 여행내내 침대에서 보내다 만성피로증후군, 만성피로면역기능장애 증후군등의 만성질병에 시달리게 되어버렸다.
누구나 저자와 같은 상황에 빠지게 된다면 몹시 괴로울 것이다. 건강관리를 못해서 걸린 병이 아니라 고대하던 여행중에 그야말로 재수없게 걸린 병이다. 왜 그 여행을 갔을까? 왜 하필 나일까? 원망하고 답답해하고 후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결국 인정하고 만다. 도저히 억울해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고 하늘과 세상을 원망할만한 일이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질병을 받아들이고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인 그녀는 운없이 찾아온 절망의 고통을 삶의 전환점으로 만든다.
이런 불행에 빠진 사람들은 처음에 무척 괴로워 하다가 극복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잘되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그들을 비웃을지 모른다. 누가봐도 기회라거나 축복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해 보이고 단지 자기 최면이나 억지 긍정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불행에 빠진 사람들도 역시 사람이다. 편견을 버리고 생각을 전환한다면 삶의 전환점으로 삼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쉽게 부정하고 비난하기까지 하는 사람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함부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누구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겪는다해도 사람에 따라 깨닫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틀리다.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서 동정의 시선이 아닌, 똑같은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로서,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바라보고 존중하기만 해도 편견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이런일이 있었기때문에 그래서 당신들에게 할말이 있다, 그래서 나를 보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당신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는 저자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내 속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