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유방임주의와 부패정치는 이후 투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변수들인데,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버블이 끝나고 경제가 공황에 이르게 되면 정치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주식꾼들과 주식회사 발기인들의 이기주의 폐악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유방임주의는 '주식시장과 무역에 일정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변한다.

-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강남규 옮김, <금융투기의 역사>,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01, 99쪽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와 개입 흐름도 이와 동일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이는 역사상 수없이 반복되었던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 어떤 특정한 패러다임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성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지와 바람으로 그러한 전환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현실적 대안의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2.
인류 역사상 최초의 투기는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로마에는 현대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과 비슷한 여러 제도들이 도입되어 있었다. 로마법이 자유로운 자산이전을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은 번성하였고, 돈은 이자를 받고 자유롭게 대출되고 있었다. 외환거래가 등장하였고 은행이 발행한 환어음을 통해 로마 국경 너머까지 자금결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후 네널란드 암스테르담, 영국 런던, 미국 뉴욕이 세계 자본의 중심지였던 것처럼 로마는 당시 금융의 중심지였다. 모든 자본이 로마에 집중된 것이다. 신용이라는 개념이 이미 출현하였고, 선박 등 재산의 안전을 위해 원시적이지만 보험이라는 개념도 등장하였다.

- 위의 책, 25~26쪽

20세기 후반 개발된 각종 최첨단 금융기법들도 완전히 새로운 기법은 아니다. 이미 옛날부터 존재했던 금융기법들이 세련된 형태로 발전했을 뿐이다. 17세기에 암스테르담과 런던에서도 각종 파생상품이 헤지와 투기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또 가치에 대한 최신개념들이 고안되었다.

- 위의 책, 99쪽

투자자들의 인식과 행태가 지난 3세기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투기의 성격과 발전패턴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1690년대 투자자들의 보물인양회사 등과 같은 기업들에 광적인 관심을 보였듯이, 현대 투자자들도 새로운 기술을 보유한 회사의 주식에 대한 투기열풍에 쉽게 휩싸일 수 있다. 금융저널리스트이면서 역사가였던 제임스 그랜트는 "과학과 기술은 크게 진보했지만, 금융은 반복된다"고 말했다.

- 위의 책,100쪽

이러한 역사적 패턴의 종식은 '인간의 역사'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물론 인간학적 질문으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니다. 90년대를 보내면서 기존에 교과서처럼 배웠던 단계론적 경제사에 깊은 회의가 들었다. 그 첫번째 계기는 <녹색세계사>를 통해서였고, 두번째 계기는 로마사를 통해 화폐와 금융의 역사를 돌아보면서였다. 그러나 아직 의문부호들만 늘어나고 있을 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것은 없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평생을 다 걸어야만 가능한 엄청난 작업일 것이다. 이런 큰 욕심을 내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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