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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평점 :
"종교의 진실성 문제는 그것의 유용성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종교가 진실하지 못하다고 굳게 믿는 만큼이나 해롭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종교가 주는 해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종교에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믿음의 성질에 좌우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어지고 있는 특정 신조들에 좌우되는 것이다. 우선 믿음의 성질에 관해 살펴보자. 여기서는, 신앙을 갖는 것, 다시 말해 반대 증거가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아니, 반대 증거로 인해 의심이 생기면 그 증거들을 억압해야 한다고 주장된다.
... (중략) ...
위에서 말한 해악들은 문제시되는 특정 신조와 관계없이, 독단적으로 주장되는 모든 신조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들에는, 뚜렷한 해악을 저지르는 특정한 윤리적 교의들이 존재한다." (위의 책, 12~13쪽)
저자 서문에 있는 위의 인용문은 종교에 대한 러셀의 관점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1장에 실린 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이 책의 제목으로도 쓰였는데, 역시 그의 종교에 대한 총괄적인 관점을 논리정연하게 제시해주는 글이다. 이 글은 1927년 3월 6일, 전국 비종교인협회 런던 남부지부 후원하에 배터시읍 공회당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의 나머지 글들은 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종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러셀의 글들을 모은 것인데, 그 주제는 무척 광범위하다. 그는 철학, 논리, 역사, 과학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무신론자이자 자유사상가로서의 자기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
이 글들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페인의 운명>이 가장 흥미로왔다. 대략의 글들은 이미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다고 느껴지는 것이 흥미로울 수밖에. 단, 러셀이 나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난 사람임에도 지금의 내 생각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느낄 때는 놀랍기도 하다.
토마스 페인을 다룬 글은 매우 압축적으로 잘 정리된 전기와 같은 글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온건한 내용이 담겼던 토마스 페인의 책 <이성의 시대>가 당대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 의해 <이성의 시대 2>가 나올법한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실린 러셀의 글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고, 여전히 우리에게 답변해야 할 문제들을 제시해 준다. 21세기의 무신론자들에게는 살아있는 고전으로 읽힐만 하다.
사족을 덧붙이면, 오타와 오역이 눈에 많이 거슬렸고, 불성실한 역자 후기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