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적인가 -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고찰, 폴리테이아 총서 2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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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있으면 2007년이다. 2007년 하면 대선이 떠오르고, 대선이 끝나면 다시 2008년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이 눈앞에 있는데, 실마리는 잘 보이지 않고, 펜대만 자꾸 굴린다. 점이라도 쳐야 할까보다.

권력 재편기에는 기존 거대 정당들도 당연하지만 극심한 부침을 겪는다. 그 구성원들은 아마도 그 순간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엄살을 떨 것이다. 그렇지만 그치들은 기본적으로 지옥에서도 배부르고 등 따실 족속들이다. 우리가 염려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당의 명함을 내민 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별 볼 일 없는 우리의 처지는 어떤가. 선거가 다가오면 푸념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가난한 집안에 제삿날만 자주 돌아온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가 정당을 하기로 한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인 것을. 그래도 그렇지 ‘제수비용’이 너무 비싸다. 원래도 비쌌지만 최근에는 인플레도 심했다. 제수 없이 공경하는 마음만으로도 제사를 모실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우리 뜻이었지만, 아직까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매번 머리를 싸맨다. 또 광주리를 들고 마을을 몇 바퀴고 돌아야 할 처지다.

선거가 과연 무엇이길래 우리를 이렇게 옭아매는 것일까. 그렇다면 선거에 아예 참여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은 정당은 물론이고 정치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굳이 제도정치로만 국한해서 이해할 필요도 없다. 학급 반장부터 노동조합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죄다 선거로 뽑는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선거는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 제도적 장치인지도 모른다.

선거만 생각하면 껄끄럽거나 성가시고 골치가 아프지만(뽑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개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니.), 그렇다고 선거를 아예 회피할 수도 없는 딜레마가 우리에게 존재한다. 물론 개별적인 탈출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적 교류 관계를 단절하고 로빈슨 크루소의 섬으로 들어간다면.

때문에 선거라는 제도 자체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비틀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 자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거는 그냥 주어진 것이고, 그냥 잘 뽑으면 된다는 사고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선거라는 제도에 한 번이라도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이 두 책을 통해 약간의 의문이라도 풀 수 있을 것이다.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은 대의제 민주주의 하의 선거제도의 다양성을 일목요연하게 잘 보여준다. 다수대표제 당선자 결정 방식만 하더라도 단순다수대표제, 연기명 중선거구제, 제한적 연기명 중선거구제, 단기명 중선거구제, 결선투표제, 선호대체투표제 등이 있고, 비례대표제 안에서도 명부식 비례대표제, 다수대표/비례대표 병행제, 지역구 불균형 보상식 비례대표제, 선호이전식 투표제 등의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소개한다.

이 부분만 잘 살펴보더라도 한국의 선거제도를 좀 더 인민주권의 원리를 잘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는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 저자는 이 책에서 ‘명부개방형 중선거구 비례대표제’를 제안하고 있다. 2000년 총선에서 청년진보당은 ‘국민개방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공약을 내세운 바 있는데, 사실 이 방안에 대한 세세한 검토는 부족했다고 본다. 취지에는 당연히 공감했지만, 실행파일을 만들면 버그가 많이 생길 안이었다. 조만간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이 팜플렛에 가까운 가볍고 경쾌한 책이라면, <선거는 민주적인가>는 꼼꼼한 주석들이 담긴 무겁고 진지한 학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의제 선거에 관한 역사적 고찰과 정치사상적 접근의 흥미로움은 책의 딱딱함을 한껏 경감시킨다. 아테네 민주주의로부터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정치체제에 이르기까지 선거제도가 추첨제를 대체해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그의 서술은 드라마틱하다. 그는 결론적으로 대의제가 민주주의적 차원도 갖고 있지만, 귀족정적 혹은 과두정적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한 논거를 통해 보여준다. 이것이 어쩌면 앞서 말했던 선거 딜레마의 본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전자의 책이 제도의 다양함을 통해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후자의 책은 역사와 사상을 통해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덕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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