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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 -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
조지 레이코프.로크리지연구소 지음, 나익주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이 책이 제법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최근 신간 중에 국회의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 소문까지 들리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정치인 혹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만 꼭 필요한 책이겠거니 하는 선입관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정치에 나름대로 호기심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이 책이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요 저자인 죠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의 창시자로 명성을 얻었고 인지주의 운동가로도 불린다. 이 책 또한 인지언어학의 개념적 은유 이론에 근거하여 서술되었는데, 이 이론을 정치에 적용한 레이코프의 분석은 앞서 나온 <도덕의 정치Moral Politics>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 >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레이코프가 MIT 재학 시절 노엄 촘스키의 제자였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지금 두 사람 모두 현실 정치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도구를 들고 정치를 해부하고 있다.
이 책의 서평 몇 개를 읽었는데, <열두가지 덫을 피하라> 부분을 인용한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그 부분을 재탕해 본다.
1. 이슈의 덫
2. 여론조사의 덫
3. 상세목록의 덫
4. 합리주의의 덫
5. '어떤 프레임 구성도 필요 없다'는 덫
6. '정책은 가치'의 덫
7. 중심주의의 덫
8. '오해'의 덫
9. 반응의 덫
10. 정보조작의 덫
11. 정책담론의 덫
12. 책임전가의 덫
여기서 세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진 않다. 정 궁금한 사람은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낫다. 참, 7번 중심주의의 덫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정동영'이다. 왜 그런지는 다음 인용을 보면 안다.
"정 전 의장은 출마선언 행사에서 ‘중산층과 통하는 대통령’, ‘중소기업과 통하는 대통령’, ‘중용의 정치로 통합력을 발휘하는 대통령’ 등 ‘3중(中)주의’를 주장하더니, “‘중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생산과 복지가 상생하는 신중도 정치’, ‘새 시대를 여는 신중도의 기수’, ‘중도의 길이야말로 탄탄한 중앙로’ 등 그가 언급한 ‘중간’은 셀 수 없이 많다. ‘중간’으로 이미지를 형성하겠다는 심산은 알겠으나 이 정도면 거의 말장난이 아닌가."(2007년 7월 3일 한국사회당 논평 <‘중간만 가면 된다’고 착각하는 한 대선주자> 중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중심주의의 덫에 빠져 있는 정치인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고로 정동영 후보는 필패 카드일 수밖에 없다. 만일 정동영 후보가 이긴다면 레이코프는 책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열두가지 덫'보다 사실 더 핵심적인 것은 '심층 프레임'과 '표층 프레임' 및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며, 다음과 같은 <인지과학의 교훈>을 명심하는 일이다.
1. 프레임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사용된다.
2. 프레임은 상식을 정의한다.
3. 프레임은 반복을 통해 뇌 속에 주입될 수 있다.
4. 활성화는 표층 프레임을 심층 프레임에 연결하고 반대 프레임을 억제한다.
5. 기존의 심층 프레임이 하룻밤 사이에 변화하지는 않는다.
6. 이중개념주의자들에게도 당신의 지지자들에게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하라.
7. 진실만으로 당신은 자유롭게 되지 않을 것이다.
8. 상대편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단지 그 프레임을 강화할 뿐이다.
사실 이상의 교훈만 갖고도 2007년 한국의 대선을 분석해 보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읽은이 모두를 초보 정치분석가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다음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2007년 대선 프레임'에 대해 나도 한 번 분석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